6월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이 끝났다. 지난 주말 발생한 서해교전이 유종의 미에 흠집을 남겼지만 지난 한달 동안 진행된 감동의 드라마는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언제 우리가 이처럼 하나로 뭉쳐 열광과 흥분을 만끽한 적이 있었던가. 또 민족적 자긍심과 '하나됨'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이번에 '4강진출'이라는 경기적인 측면과 '거리응원'이라는 경기외적인 측면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니,우리 자신도 놀랐다. 특히 '거리응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웅장한 축제이자 뉴 밀레니엄의 빅 이벤트였다. 7백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쳐대는 '오∼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은 그동안 우리에게 잠재돼 있었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 줬다. 시인 김지하씨는 이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을 보고 "지식인들이 설명해야 하는데 큰일났다"고 지적한다. 그렇다. 사회학자 심리학자 문화비평가 정신과의사 등 내로라 하는 지식인들이 이 현상을 분석하고 있지만 모두 부분적일 뿐이다. 순수한 열정의 거대한 결정체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고,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이 현상을 놓고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헤겔의 변증법을 생각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기자는 엄청난 인파에서 뿜어져 나왔던 힘과 열기와 에너지가 분명 우리 사회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쩌면 질적 변화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이 변화를 이끌어 가는 주역은 10대들이다. 기자가 광화문과 서울 시청 앞에서 응원을 하며 감동받은 것 역시 10대들이었다(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15~25세의 W(World Cup)세대,R(Red)세대 또는 '6월 세대'의 중심세력도 10대다).이들의 '티없이 맑은 표정'과 '순수한 열정' '어른보다 더 성숙한 의젓함' 등이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교육환경 아래 형편없는 교육서비스를 받는 이들이 어떻게 그처럼 높은 수준의 질서의식을 갖췄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들의 행동과 의식은 이미 선진국 수준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 있었다.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같이 춤추고,스스로 거리를 청소하고,질서 있게 노는 것이 기존의 놀이판하고는 달랐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으레 고성이 오가고 싸움이 벌어지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었다. 이들 10대를 보면서 기자는 10년전 LA흑인폭동 사태를 취재할 때 만났던 1세대 교포들의 눈물이 떠올랐다. 당시 한인상점들이 흑인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수많은 젊은 교포2세들은 이웃동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나갔었다. 부모가 말리는데 뛰어나갔다가 희생된 '아름다운 청년'도 있었다. 교포 1세대들은 그때 눈물을 흘리면서 "돈 번다고 애들 교육에는 신경도 못썼는데 2세들이 저렇게 훌륭하게 컸으니 이민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교포들은 흑인폭동사태를 겪으면서 1세대와 2세대간 세대차이를 완전히 극복하고,2세들에 대한 1세들의 우려를 말끔히 씻었던 것이다. 어른들을 감동시키는 청소년이 있는 나라,대한민국 코리아.이건 '되는 나라'다. 이제 축제는 끝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태극전사와 4천7백만 모두 배우가 되어 공연했던 이번 축제는 세계의 60억 관객들로부터 힘찬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에겐 항상 허탈감과 공허감이 밀려오게 마련이다. 공연에 쏟은 시간과 열정이 클수록 공허감은 더 커진다. 훌륭한 배우는 그러나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과 준비로 공허감을 극복한다. 우리도 다음 무대를 준비하자.그 무대는 정치와 경제가 됐으면 좋겠다. cw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