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vlgary" 4년전 이탈리아 보석 브랜드 불가리(Bvlgary)가 국내에 상륙했을 때 사람들은 익숙치 못한 알파벳 배열을 발음하는데 곤란을 겪었다. 그만큼 인지도도 낮았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1백80도로 달라졌다. 불가리는 다른 유수 브랜드를 제치고 럭셔리 주얼리의 대명사로 여겨지게 됐다. 불가리 특유의 볼륨감과 과감한 디자인의 보석들은 패션리더 사이에 열렬한 사랑을 얻고 있다. 최근엔 히딩크 감독이 골세레모니로 어퍼컷트 제스추어를 날릴 때 그의 손목에서 빛나던 불가리 시계가 주목받으면서 매출이 급증하는 "히딩크 효과"까지 톡톡히 누리고 있다. 주얼리 시계 향수... 패션 액세서리 부문에서 두루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불가리의 출발은 19세기 그리스에서 은세공업을 하던 일가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칼라리테스 지방의 작은 마을 에피리스에서 살던 소티리오 불가리가 주인공. 1884년 이탈리아로 이주한 불가리 가족은 로마에서 최초의 불가리 상점을 시작했다. 1905년 아들 콘스탄티노와 죠르지오와 함께 콘도티 거리에 두번째 상점을 열었다. 콘도티 상점은 오늘날까지 불가리 본점으로 남아있다. 불가리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차대전 후.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은 불가리 가문의 두 형제는 당시 보석세공의 주류를 이뤘던 프랑스풍의 엄격한 원칙주의 기법을 과감히 탈피했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나 이탈리아 르네상스풍이 반영된 독창적이고 대담한 디자인은 하이패션계에 선풍을 일으켰다. 70년대 뉴욕에 최초의 해외상점을 시작으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불가리는 현재 파리 제네바 등에 1백여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디자인의 고전이 된 "불가리-불가리"시계를 비롯한 숱한 베스트셀러들은 불가리 제국의 확장에 막강한 동력을 보탰다. 한국 진출 4년째인 불가리는 지난해 이탈리아 본사의 지분이 들어오면서 불가리코리아로 사명을 바꿨다. 불가리 보석류의 가격대는 명품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 초기 내수 시장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초고가인 불가리가 과연 국내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업계의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불가리는 최고의 제품을 원하는 상류층의 잠재적 욕구를 정확히 파악했고 "진정한 소수를 위한 최고의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일관적으로 제안했다. 명품 시장의 틈새를 파고든 "명품 주얼리 브랜드"로서의 입지 다지기도 주효했다. 보통 명품 제품군은 잡화 위주로 편성돼 있었다. 수익의 대부분은 신발과 가방이 차지했다. 이런 경향은 귀금속류에도 마찬가지였다. 보석류보다는 시계가 매출의 중심이었던 것. 하지만 불가리는 시계 위주의 안정적 시장을 택하는 대신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던 명품 보석 브랜드를 기치로 내걸고 나왔다. 틈새전략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한편으로는 젊은 취향의 고객 확보에도 힘썼다. 불가리 고유 디자인을 적용한 가죽 실크 선글래스 향수등 다양한 액세서리 제품을 내놓으며 고객층을 넓혔다. 최근엔 보석과 시계라인에서도 20대부터 즐길 수 있는 1백만원대 상품을 베스트셀러로 히트시켰다. 불가리 홍보팀의 이주은 차장은 "국내에서도 명품 보석 시장이 활성화된 만큼 더욱 차별화된 불가리의 이미지를 쌓아나가면서 VIP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02)546-2906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