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사태의 충격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미국 2위의 장거리 전화회사인 월드컴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 터져나와 미 증시를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38억달러라는 회계조작 규모도 엄청나지만 회계투명성 시비에 휘말린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더 큰 일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순이익과 현금흐름을 부풀리기 위해 지난 97년 이후 최근까지 회계장부에 손을 댄 적이 있는 미국기업수가 1천개에 육박한다고 하니 투자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짐작할 만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업을 감시해야 할 회계법인과 금융감독당국이 제 역할을 못하고 심지어는 편법적인 회계처리를 방조했다는 사실이다. 이러니 미국기업에 대한 신뢰추락과 주가폭락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문제는 그 불똥이 달러약세와 외자유출, 그리고 경기불안 등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는데 있다. 우선 주가급락은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미국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금융기관들이 문제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주식투자로 인해 거액의 손실을 입으면서 신용경색마저 우려돼 더욱 그렇다. 따라서 문제기업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미국정부의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단지 응급조치일뿐 만연된 도덕적 해이를 일소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꽃인 증시를 안정시키기 위한 보다 강력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민간연구기관인 컨퍼런스보드(CB)가 폴 볼커 전 연준리(FRB)의장,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 등 저명인사들이 참여한 블루리본 위원회를 창립해 경영진 보수 및 스톡옵션 회계처리 등 기업신뢰와 관련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오는 9월 발표할 예정이어서 그 내용이 주목된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온몸으로 겪은 우리 정부와 기업들 또한 잇따른 미국의 회계부정 파문을 거울 삼아 제도개선과 관계법규 정비에 더 한층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