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팀의 월드컵 경기 날이면 전국의 밤하늘은 폭죽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불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공식적인 폭죽행사 이외에도 응원단이 모이는 거리마다 뒤풀이로 갖가지 폭죽이 등장해 흥을 돋우기 때문이다. '폭죽 세레나데'라고나 할까. 여느때 같으면 소음으로 들릴 법도 한데 '대∼한민국'구호와 엇박자 그리고 '아리랑' 리듬속에서 하모니를 이루는 듯 하다. 암흑속의 예술로 불리는 폭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수많은 사람을 동시에 매료시킬 수 있는 것으로 폭죽만한 게 없어서일 게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불꽃의 날'이라 불릴 정도로 온 대륙이 폭죽속에 파묻힌다. 폭죽제조업체들은 이날 매상으로 1년을 버틴다고 한다. 오늘날 폭죽은 서양에서 더욱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원조는 중국이다. 기원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고 통신수단으로 봉화대를 세웠는데,이 때 봉화가 화약의 원료인 초석이었다는 것이다. 봉화가 폭죽의 시조인 셈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중국에서는 정월 초하루 첫 닭이 울면 마당에서 폭죽을 터뜨려 악귀를 쫓는 세시(歲時)풍속이 있었다. 송나라 때는 저자거리에서 폭죽을 떠뜨리며 귀족과 평민이 함께 어울렸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에서는 폭죽이 16세기 말부터 일종의 놀이로 유행하면서 전국 경진대회도 열리고 폭죽제조의 명문가가 생겨났다고 한다. 유럽 최초의 폭죽은 14세기 후반 이탈리아 피렌체의 성(聖)요한축제에서 선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폭죽은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대관식이나 왕족과 귀족의 결혼식에서 사용됐다. 일종의 신분과시용이었다. 특히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폭죽을 아주 좋아해 여왕이 직접 참관하는 폭죽대회를 열기도 했다. 독일과 일전을 치른 어젯밤도 전국의 하늘은 영롱하게 빛났다. 프랑스의 불꽃놀이 예술가인 위베르는 "폭죽은 스토리와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반도 하늘을 수놓은 폭죽은 대한민국의 존재와 기상을 세계에 알리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