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기초분야 연구기관 러드포드 애플턴연구소(RAL) 산하의 가속기 연구센터 아이시스(ISIS). 이곳에선 매년 전세계에서 모여든 1천5백여명의 과학자들이 중성자와 뮤온 빔으로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재료과학 공학 생물학 등에 대한 6백여가지 실험을 한다. ISIS는 '작은 과학 실험을 위한 거대한 시설'로 통한다. 축구 운동장보다 큰 거대한 가속기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초미세 세계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곳에서 이뤄지는 실험을 살펴보면 세계 과학기술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시 슈타이젠베르그 박사는 "예전엔 가속기로 물질구조 규명 등 순수 과학실험을 주로 했지만 최근엔 바이오 및 나노기술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사선 이용기술(RT)의 핵심은 가속기=가속기는 원자를 이루는 전자나 양성자의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물질의 최소단위를 밝혀 내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규명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순수 과학탐구는 물론 암 치료,반도체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암 치료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는 양성자 치료장치(Proton Therapy)도 가속기의 일종이다. 가속기는 인간 생명활동의 근본인 단백질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RT 활용경쟁 가열=스위스에 자리잡은 세계 최고 가속기연구소 PSI는 간에서 해독작용을 하는 단백질인 알데하이드디하이드로지네이즈(ALDH)의 구조를 최초로 분석해 단백질체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PSI는 양성자 치료기 분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갠트리'라고 불리는 양성자 치료기는 일반 방사선 치료보다 효과가 훨씬 우수하다. PSI의 갠트리 분야 책임자인 에로스 페드로니 박사는 "양성자 치료기로 몸 속 깊숙이 있는 암세포를 1㎜ 정확도로 파괴할 수 있다"며 "PSI에 설치된 갠트리로 지난해까지 3천4백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고 말했다. 벨기에 브뤼셀 근교에 있는 IBA와 MDS 노르디안은 첨단 과학기술도 충분히 상품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두 회사는 암 진단 및 치료에 필요한 방사선 동위원소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방사선 동위원소 생산장치,방사선 살균장치,양성자 치료기 등 다양한 가속기를 개발해 판매 중이다. 과학 실험에 주로 사용되던 가속기를 의료용으로 개발,시장을 창출해 낸 것이다. IBA는 작년 매출이 2억5천8백유로(약 2천8백억원)에 달했다. 전체 매출에서 가속기가 61.1%,방사선 동위원소 생산 27.3%,양성자 치료장치가 11.7%를 차지했다. IBA 최고연구책임자(CRO)인 이브욘건 박사는 "일본과 미국에 2대의 양성자 치료장치를 구축했으며 현재 중국에 보낼 양성자 치료기를 만들고 있다"며 "이 시장은 앞으로 매우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나다에 본사가 있는 MDS 노르디안은 방사선 동위원소 생산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이 회사의 매니징 디렉터 프랑수아 쿠이야르는 "전세계 의료용 방사선 동위원소 시장 50%을 MDS노르디안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가속기 관련 기술개발 나서야=한국에서도 최근 양성자 가속기 기술 개발을 위한 프런티어사업단이 꾸려졌다. 프런티어사업단은 오는 2011년까지 1천2백80억원을 들여 양성자 가속기를 구축할 예정이다. RT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양성자기술개발사업단장인 한국원자력연구소 최병호 박사는 "국내 양성자 가속기 기술이 선진국을 따라가선 곤란하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선진국에서 산업화하지 못한 틈새기술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런던(영국)·취리히(스위스)·브뤼셀(벨기에)=김경근 기자 cho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