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빅5 회계법인 가운데 하나인 아더 앤더슨.조만간 그 이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외신을 타고 들어오고 있다.


예상됐던 일이다.


그러나 '아더 앤더슨'이란 이름의 무게 때문인지 충격은 간단치가 않다.


기자가 아더 앤더슨이란 이름을 구체적으로 접했던 것은 자동차업계를 담당한 1999년부터였다.


이 회사는 당시 현대 기아 대우 쌍용 등 국내 자동차업계에 대한 컨설팅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충격적인 두 가지 보고서로 업계를 뒤흔들었다.


첫째는 현대자동차 경영권을 놓고 정몽구·몽헌 형제의 분쟁이 한창이던 99년 여름에 나온 현대자동차 컨설팅 보고서.아더 앤더슨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권유했다. 정몽구 회장은 대주주의 지위를 보장받은 후 현대차는 전문경영인에 의해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오너체제의 폐해방지를 위해 채권단의 출자전환도 추천했다. 젊은 직원들의 상당한 공감을 얻었던 이 방안은 물론 권유에 그치고 말았다.


보고서는 또 수익성 높은 금융사업을 강화하라고 권유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를 받아들여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했다.


두번째 보고서는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보고서.수익성이 떨어지는 부평공장을 폐쇄하고 인도 등 해외법인으로부터 철수하라는 것.노조는 즉각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인수한 대우자동차의 처리 방향은 이 보고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새삼 보고서를 언급한 것은 이들이 갖고 있던 절대적 영향력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전세계에 걸쳐 7만여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아더 앤더슨은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자동차업계는 물론 한국 정부와 금융계의 컨설팅을 도맡다시피 할 정도로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이런 회사가 미국의 한 도시,직원 20여명밖에 안되는 사무실에서 일어난 부실감사 때문에 파멸의 길을 걷게 됐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경제의 세계화가 가져다준 부산물인 '신뢰의 세계화'―.세계 회계업계의 거함 아더 앤더슨을 하루 아침에 패망의 나락으로 빠뜨린 부실감사의 뼈아픈 교훈은 정부와 국내 기업들에 결코 강건너 불일 수 없을 것 같다.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