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우리 국민도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축구장에 가본적 없는 사람들조차 축구에 열광하는 현상을 사회심리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으며,정치지도자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우리도 세계 정상급이 될 수 있다는 국민의 열망이 표출된 것 아니겠는가. IMF 경제위기로 움츠러들었던 국민의 자존심,미래 비전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치로부터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고자 하는 국민의 마음이 응원이란 행동으로 폭발하지 않았을까. 월드컵에서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었으며,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 월드컵을 통해 국민의 뇌리에 가장 깊게 각인된 것이 히딩크 감독의 프로정신과 용병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우리사회의 심각한 병폐인 혈연 지연 학연 등 연줄에서 벗어나 대표팀을 구성할 수 있었고,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전문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우리가 하지 못했던 일을 히딩크가 실행했기에 더욱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은 유능한 지도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도자를 올바로 만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연공서열에 의해 승진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우리사회의 관행도 개선해야 하겠고,아무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어 소위 말하는 함량미달의 인사를 무책임하게 등용해왔던 정치지도자들이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한편 말로는 누구나 연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왜 못벗어나고 있으며,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연줄이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은 실력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업적에 대한 평가가 철저히 이루어지는 관행을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이러한 관행에서 탈피할 수 있다. 목표달성 여부와 무관한 정치적 간섭이 자행되는 여건에서는 적절한 평가시스템이 확립될 수 없다. 우리의 경우엔 연줄을 고려하는 것이 평가,즉 자리를 고수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기에,그러한 관행이 고착됐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는 업적 외의 다른 잣대로 목표달성 여부를 평가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외국인인 히딩크'를 통해 이런 문제점들이 극복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설령 히딩크만큼 출중한 국내지도자가 있었더라도 그처럼 성공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점을 이해하면,왜 필히 외국인이어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자명하지 않은가.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스스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몸과 마음이 뒤따르지 않는 경우에 비견될 수도 있다. 나라의 경제운영에 있어서 대외개방의 유용성이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수주의나 사대주의라는 이념적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되며,실용적 추진 방안으로 이해해야 한다. 히딩크의 영입이 유능한 국내 축구지도자들의 경험축적 기회를 앗아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열린 사회나 경제개방이라는 전략은 일부 국가구성원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체에 더 많은 이득을 창출하기에 바람직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특징적 국민정서라 여겨져 왔던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증이 불식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경험은 없을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거부감도 실은 우리의 내부지향적·국수주의적 국민정서가 장애였다고 생각한다. 세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만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할 수 있다. 경제개방이란 히딩크를 도처에서 활용하자는 전략으로 보면 된다. 연줄이나 지역감정 같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정치구호로 치유할 수는 없다.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있는 개구리들은 끼리끼리 싸울 수밖에 없다. 단일 민족은 외부세계와 대결할 때 뭉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기회에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정치지도자들뿐 아니라 온 국민들도 열린 사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방이라는 전략을 통해 우리 내부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는 현명함을 배운다면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chskim@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