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숙 < 시인.출판사 마음산책 대표 >


전 국민이 날마다 연호하며 온통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월드컵 게임들을 보고 있자니, 보면 볼수록 축구라는 경기가 삶의 축도(縮圖) 같다는 감상이 들기 시작한다.

먼저 인생사의 새옹지마와도 같은 이치를 보여주는 강팀들의 조락(凋落)은 무엇보다도 이런 느낌을 강하게 이끌어냈다.

새삼 적을 것도 없이 FIFA 랭킹 세계 1위와 2위인 프랑스와 아르헨티나가 하루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16강 탈락이라는 비운을 맞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세계적인 선수들을 그 어느 국가보다 많이 확보하고 있는 이들 나라는 비운도 비운이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결과로 드러난 성적이 납득될 만큼 졸전이었다.

오죽하면 프랑스팀은 세 경기를 통해 단 한점도 득점하지 못하며 '전 대회 우승자의 16강 탈락' 기록을 남기게 됐을까.

듣기로 전 대회 우승자가 16강에 탈락한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6강 예선 리그전 방식이 채택된 근년에는 유일한 기록이라고 한다.

하여튼 세계적인 강팀들이 진면목을 발휘하지 못하고 쓸쓸이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무엇엔가 홀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 팀의 선전이야 더 말할 것도 없는 필지의 사실이지만, 세네갈 일본 등 지금까지 세계 무대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축구 약소국의 선전도 인생사의 굴곡 많은 행로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팀의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맹활약이 거스 히딩크 감독의 기본에 충실한 조련에 힘입은 것이라는 사실도 삶의 길에 대입해 볼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다른 교훈 하나는 이번 대회처럼 반칙에 대해 엄격한 벌칙이 적용된 예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사소한 태클이나 가벼운 반칙에 대해 매번 경고를 주는 것은 경기 흐름을 끊어 관중들의 재미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런데 바뀐 룰은 이런 반칙을 원천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면서 공격적인 축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엄격한 경기 규칙의 적용이 앞으로는 수비자의 반칙을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인생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삶의 현장에서는 갈등이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

따라서 불편부당한 룰의 성립과 공평한 집행은 인생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항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축구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중요한 삶의 진실들을 환기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됐다.

우리팀이 히딩크 감독한테 고강도 조련을 받았지만 고질적인 문전 처리 미숙, 큰 경기에서의 경기 운영방식 미숙, 경기가 잘 안풀릴 때 실마리를 풀어 줄 리더의 부재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규칙이 잘 정립된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국전을 마치고 경기장을 나가면서 히딩크 감독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 바로 그 기본기의 부재.

물론 그간의 경기만으로도 우리 팀의 눈부신 성과에 찬사가 부족할 정도인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경기력이 앞으로 40,50년 후가 될지, 아니면 그것보다도 더 후가 될지 모르는 개최국의 이점이나 영민한 외국인 지도자의 지도력이 상실된 후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바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강팀들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고, 또 그 결과 이길 수도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고무할 만한 점이다.

스포츠라는 것이 꼭 이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경기력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변명을 참가의 의의를 찾는데 두는 것도 적절치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룰을 지키고 페어플레이를 하면서 이기는 성숙한 사회, 그리고 지더라도 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민족에게 미래가 밝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한 것도 진행중인 월드컵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운동장에서 스타나, 그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선수들을 막론하고 엄청난 땀을 쏟는 것을 보면 한순간 숭고한 마음이 된다.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축구와 인생사는 그런 점에서도 일란성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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