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6년 유럽의 세계지도에 나타난 조선은 중국대륙과 일본 사이에 있는 고구마 모양 섬나라였다. 조선의 실체가 서방세계에 드러난 건 네덜란드인 하멜이 1653년 8월 제주도에 표착, 66년 9월 일본 나가사키로 떠날 때까지 보고 겪은 일을 상세히 담은 '하멜표류기'(1668년)를 펴낸 뒤부터였다. 하멜은 이 책에서 17세기 중반 조선의 단면을 이렇게 기술했다. '먼저 술을 한잔씩 주더니 1시간쯤 지나 밥을 조금 줬다. 우리가 굶주려서 많이 먹으면 해로울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왕을 알현한 뒤 호위부대로 선발돼 한달에 쌀 70온스(약 2㎏)씩을 받았다.…조선사람들은 우리의 흰 피부를 부러워 했다. 전라도에 사는 동안 옷이 해져 구걸하게 해달라고 했으나 그런 건 중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했다.' 하멜의 이런 기록에도 불구하고 1806년 프랑스 신부 셍 소베의 삽화 속 조선인은 인디언 원주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이은 제물포및 한성조약으로 개항이 이뤄지면서 한국을 찾는 서양인은 늘어났고 이들은 독자적인 전통문화를 지닌 조선의 다양한 모습을 전했다. 화가 휴버트 보스는 1898년 고종황제 어진(御眞)을 그렸고,'런던뉴스'는 1907년 7월 서양인들이 고종을 알현하는 사진을 보도했다. '코리아스케치-파란 눈에 비친 1백년 전의 한국전'(8월26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은 바로 이런 자료를 모은 독특한 전시회다. '2002 한·일 월드컵대회' 기념 문화행사중 하나로 마련된 이 기획전은 개항무렵 이 땅에 왔던 서양인들이 당시 조선의 사회 생활상을 얼마나 세심하게 관찰했는지를 알려준다. 국적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조선은 모자의 나라'라고 기록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또 늙은 총각과 어린 신랑을 함께 찍은 사진 밑에 '신랑이 애들과 사진 찍기 싫다고 했다'는 설명을 곁들이는 등 당시 상황이나 관혼상제 풍습을 꼼꼼히 서술했다. 1백년전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의 철저함은 놀랍거니와 월드컵대회 관람차 이 땅을 찾은 이들이 바라보는 21세기초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