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세 체납자들의 금융거래정보 제공을 둘러싼 서울시와 은행들의 이번 고발사태는 정부가 관련 법령정비를 소홀히 한데서 그 1차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금융거래정보 제공 규정을 만들면서 그에 따르는 비용부담 문제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아직도 '민(民)'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관(官)' 위주로 정책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아울러 이번 사태는 국내 은행들도 이제는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회사'로 탈바꿈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IMF 위기 이후 철저하게 수익 마인드로 무장한 은행들은 "손해보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고발사태 경위 =서울시가 은행들에게 지방세 체납자의 금융거래정보 제공을 처음 요구한 것은 작년 4월이었다. 서울시는 당시 12만7천여명에 대해 예금보유내역 조회를 의뢰했다. 정보제공 요구는 은행 본점이 아니라 지점별로 이루어졌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금융거래 정보 등의 제공을 요구하는 자는 금융기관의 특정점포에 이를 요구하여야 한다'(4조2항)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 지점들마다 12만7천여명의 금융거래정보를 모두 조회해야만 했다. 쉽게 말해 서울시내 3천5백여개 점포가 모두 12만7천여명의 예금내역을 개별적으로 뒤진 것이다. 그 결과 상당수 체납자의 예금보유내역이 드러났다. 자동차세 2백만원을 체납하고 있는 사람의 은행계좌에서 현금 20억원이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 덕분에 서울시는 지난해 약 8백억원의 체납세액을 추징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는 점이다. 인건비, 잔액조회증명서 발급비에다 조회사실을 본인에게 통보하는 비용까지 들었다. 이에 은행들은 건당 1천3백50원 정도인 본인통보 비용만이라도 서울시가 정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이같은 요청을 무시한 채 다시 작년 11월 체납자 8만7천여명의 금융거래정보 제공을 요구하자 은행들도 더 이상은 손해볼 수 없다며 거부한 것이다. 양측의 입장 =정부는 뒤늦게 비용부담 문제를 규정한 금융실명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서울시는 이 시행령 개정안이 확정돼야 관련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법적근거가 있어야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서울시 이정엽 과세징수2팀장은 특히 "외국계 은행 등 일부 은행에서는 수수료를 문제삼지 않고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며 "이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은행들을 형사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형사고발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보제공을 거부하는 은행들은 추가적인 고발을 통해 누범(累犯)으로 몰아가겠다며 강경한 태세다. 그러나 은행들은 '명백히 발생한 비용'에 대해 법적 근거를 따지는 서울시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며 "사기업이 고객과 거래할 때 받는 수수료가 모두 법에 명시돼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은행들은 특히 보건복지부의 경우 작년에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신청건수 1백7만건의 금융거래정보 제공을 요청하면서 실비를 전액 부담했으며 올해는 인건비 등 조회수수료도 주겠다고 약속해온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시중은행 간사를 맡고 있는 외환은행의 김채길 차장은 "영국의 은행은 금융거래정보 제공대가로 15파운드(약 3만원)를 받고 있다"며 "수수료 협상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형사고발하는 처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변호사의 견해 =익명을 요구한 모 법무법인 변호사는 "서울시가 조세범처벌법에 규정된 '체납자나 체납자 재산을 점유하는 자가 조세를 면탈할, 또는 면탈케할 목적으로 그 재산을 장닉탈루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제12조 1항)'는 근거에 따라 은행들을 고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그러나 "이 조항이 적용되기 위해선 은행의 조세면탈에 대한 목적의식이 있는지 여부가 검증돼야 하는데 은행들은 단순히 비용만 문제삼고 있으므로 이 조항을 적용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따라서 서울시가 형사고발을 했더라도 피고발자들이 실제로 입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게 법조계의 견해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 -------------------------------------------------------------- [ 서울시.시중은행간 수수료 분쟁 일지 ] 2001.4월 서울시, 은행에 지방세 체납자 12만7천여명 금융거래정보 제공요구 2001.7 은행들, 재경부에 유권해석 의뢰 2001.10 서울시, 지방세 체납자 8만7천여명 정보제공 추가요구 2001.12 은행연합회, 서울시에 비용부담 요구 2002.2~3 은행.서울시 수수료 문제 협의 2002.4 서대문구청 조흥은행장 고발, 중랑구청 서울은행장 고발, 성동구청 국민은행 화양동지점장 고발 2002.5 성동구청 제일은행 뚝섬지점장 고발 2002.6 서울시, 은행장 지점장 등 3백50명 추가 고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