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전자업체들이 '병행수입'과 '밀수'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병행수입은 외국에서 적법하게 유통되는 상품을 수입업자가 국내 상표권자의 허락없이 들여오는 것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병행수입은 일본 메이커가 대거 진출한 2000~2001년엔 주춤했으나 최근 환율하락을 무기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병행수입품 가격은 정품보다 10~20% 싼데다 최근에는 환율급락으로 가격차이가 더 벌어지는 추세다. 주요 타깃은 파나소닉이다. 한국 공식법인인 나쇼날파나소닉코리아 관계자는 "병행수입품에 대해서는 우리가 무상수리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애프터서비스(AS) 혜택을 못받은 소비자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 걸려오는 외부 전화중 병행수입품을 구입한 소비자의 AS 불만이 절반에 달한다는 것. 최근에는 J통상이 병행수입으로 파나소닉 휴대용 CD플레이어를 들여오면서 국산 어댑터를 끼워 팔아 고장이 발생, 대규모 반품사태를 빚기도 했다. 파나소닉 제품이 특히 병행수입의 표적이 되는 이유에 대해 회사측은 "불량률이 낮고 인기 브랜드인데다 환율 탓도 있다"고 분석했다. 경쟁사에 비해 본사 지원이 적어 가격대응 여력이 부족하고 신제품 출시시기가 일본과 6개월 이상 벌어지는 것도 파나소닉 브랜드의 병행수입품이 많은 이유로 꼽힌다. 현재 산자부는 병행수입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에 수입되는 모든 전자제품에 대해 산하 기술품질원이 발급하는 안전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전자제품 본체가 아니라 어댑터가 규제 대상이기 때문에 어댑터를 빼고 수입하는 편법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안전인증제도를 피하기 위한 밀수도 증가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보따리상' 규모였지만 국내시장이 커지고 수입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컨테이너를 동원한 '기업형' 밀수도 생겨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소니코리아 영업부 관계자는 "시중에 유통되는 수입 브랜드 전자제품중 병행수입과 밀수가 4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밀수로 들어온 수입산 캠코더가 '카드깡'의 도구로 이용된 후 헐값에 유통되는 경우가 발견돼 가격교란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메이커들은 유통회사에 일부 제품 판권을 일임해 한편으로 만들거나(JVC) 본사와 신제품 출시 시차를 좁히고(소니) 그때 그때 가격을 조정해 (파나소닉) 대응하고 있지만 법적 규제가 어려워 한계가 있다며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또 정품의 모델명 끝에 KR(소니 JVC), UA(샤프 캠코더) 등 특정 알파벳을 추가해 병행수입품과 구분하고 있다. 파나소닉 관계자는 "비정상적인 유통경로로 싸게 산 경우에는 보다 많은 수리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