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49년에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은 직장인의 비참한 최후를 그린 희곡작품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세일즈맨인 주인공 윌리 로만은 자기 일을 천직으로 여기면서 성실하게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30년간 근무한 회사로부터 해고당한다. 기대를 걸었던 두 아들도 빗나가기 시작했다. 배반당한 슬픔,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으로 몸부림치던 로만은 자동차를 과속으로 달려 결국 자살한다. 식구 몰래 들었던 보험금은 주택부금의 마지막회를 붓는 액수였다. 이 작품은 사회비판도 곁들여져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도 로만류(類)의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직장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월급쟁이들이 구조조정이다,연공서열 파괴다 해서 거리로 내몰려서이다. 이제는 신세대 직장인들 사이에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평생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기업도 종신고용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고 있기도 하다. 종전과는 달리 '이직'은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더 나은 보수와 대우를 좇아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기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이다. 직장을 수시로 바꾸는 소위 '메뚜기족'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엊그제 헤드헌팅 포털사이트인 HR파트너스가 발표한 조사를 보면,우리 젊은 직장인들이 느끼는 '체감 정년'은 37∼41세라고 하는데,이는 지금의 풍조를 확인해 주는 것 같다. 뉴욕 월가의 평균 정년이 30대 중반이라는 사실이 이젠 낯설지가 않다. 직장인들의 이같은 의식변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는 않다. 평생직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경쟁적으로 자신의 재능이나 기술을 개발하게 될 것이고 이는 사회 전체에도 보탬이 될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수명이 길어지고 정년은 짧아지는 현실속에서 체감정년이 현실화돼,로만형(型)의 실업자가 양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