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에서 흔치 않게 높은 저축률을 보이는 나라다. 1988년에는 국민총생산에서 총저축이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다다르기도 했다. 일본이나 대만 정도가 그런 고저축률을 보인적이 있을 뿐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저축률이다. 이렇게 높은 저축률은 우리에게 큰 국제수지의 흑자를 실현해 주었다. 1988년 당시 우리가 지니고 있던 총외채가 3백15억달러였는데 이때 국제수지(경상수지) 흑자는 1백45억달러에 달했다. 외채의 절반을 한해에 갚을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 후 총저축률은 점차 감소해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1996년에는 34%로 떨어졌다. 그만큼 소비율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국제수지가 크게 적자로 돌아 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IMF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들의 과소비가 그 원인이었다고 했던 것도 이런 점에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위기의 요인은,소비율이라기 보다는 높은 투자율에서 찾을 수 있다. 34%의 저축률은 80년대 말에 비해서는 감소한 것이 틀림없지만,세계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높은 저축률을 넘어서는 것이 한국의 투자율이었다. 1996년 투자율은 38%로서 총저축률을 4%나 초과하고 있었다. 물론 저축을 초과하는 투자가 이루어지자니 엄청난 국제수지상의 적자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투자율이 높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 될 수는 없다. 외국에서 빌려 투자를 했더라도 효율적으로만 했더라면 후에 높은 생산을 가져와 빌린 외채를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투자는 소위 관치금융으로 정부의 보증에 의존해 기업들이 다투어 투자를 확대한 것이었고,그 결과 중복 과잉투자로 부실기업이 됐던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경제개혁,특히 금융의 구조개혁을 통해 IMF위기를 극복해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과거와는 전혀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우선 저축률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8년만 해도 34%정도를 유지하던 총저축률이 작년에는 29%대로 내려 앉았다. 이와 같은 저축률의 하락,바꾸어 말해 소비율의 상승은 신세대들의 생활 패턴 변화에도 기인한다고 할 수 있으나 현정권의 복지정책, 저금리정책 등에도 원인이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큰 폭의 투자율 하락이다. IMF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투자율이 21%로서 위기 이전보다 10% 이상 크게 하락했다. 물론 위기 직후의 투자율 하락은 금융질서의 불안정에 기인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개혁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후에도 투자율은 좀처럼 크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27% 정도에 그칠 뿐,여전히 저축률보다 크게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낮은 투자율은 우리 경제의 잠재적 성장률을 낮출 뿐 아니라 실업문제 해결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 한동안 우리는 높은 저축률을 초과하는 더 높은 투자율에 의해 경제위기를 맞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축률이 크게 하락함과 동시에 그 하락한 저축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투자율 때문에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이를 인식해서인지 얼마전 경제부총리가 기업들이 투자를 게을리한다고 질책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총리가 질책한다고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관치금융이 통용될 때에나 통하는 방법이다. 부총리는 기업을 질책할 권리가 없다. 기업이 왜 투자를 하지 않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처방을 내릴 임무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금융질서는 분명히 바뀌었다. 투자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기업이 결정할 일이다. 이제 중요한 일은 진정코 기업으로 하여금 자유스럽게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소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아울러 저축률도 올려야 한다. 저축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투자는 외채를 누적시킬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탱될 수도 없다. 소비자로 하여금 저축할 의욕을 느끼게끔 인센티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저축률과 투자율의 하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때,시장경제의 창달을 주창하면서 구조개혁을 이끌어 온 현정권의 경제정책은 결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얻지 못할 것이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