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자 "일만큼 사랑에도 열중하고 싶지만 데이트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답니다.남자들이 퇴근할 무렵이 제가 가장 바쁜 때거든요.그래도 아직은 운명적인 만남을 믿고 있습니다." 패밀리레스토랑 베니건스 도곡점의 박숙자 점장(33)이 아직까지 미혼인 이유다. 소녀같은 사랑을 꿈꾸는 그녀지만 사내에선 일에 철두철미한 "강철 여자"로 통한다. 지난 1996년 매장 최하위직인 서버로 외식업계에 뛰어든 박 점장은 불과 5년만에 "패밀리레스토랑의 꽃"인 점장 자리에 올랐다. 알짜 매장인 코엑스점을 거쳐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도곡점에서 1백20여명 직원들의 사령탑으로 일하고 있다. 총 6백5개 좌석에 연 매출이 70억원(2001년)에 이르는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의 패밀리레스토랑을 총괄 관리하는 직책이다. 남자들도 오르기 어렵다는 점장 자리가 그냥 찾아온 것은 아니다. 관동대 관광경영학과를 나온 박 점장은 특급 호텔에 들어가 서비스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베니건스로 옮기기 전까지 호텔 커피숍은 물론 일식당 한식당 뷔페식당 등을 거치며 "나"를 버리는 혹독한 과정도 밟았다. "당시만 해도 대학물 먹고 서빙하는 것을 꺼리던 때였죠.육체적으로 힘든 식음료 분야를 선택한게 지금 점장으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녀는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시련을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부딪쳐 이겨내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박 점장은 "힘들다고 상담을 청해오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그들이 시련을 이겨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0대가 대부분인 남녀 직원들에게 자상한 "언니"로,푸근한 "누나"처럼 대하지만 잘못을 지적할 때는 매정하기 이를 데 없다. "매니저 8명 가운데 7명이 남자입니다.호되게 질책이라도 하는 날엔 담배라도 한대씩 피우며 풀어주고 싶은데 여자로서 그게 참 어렵더라구요.밥이나 술을 함께 하면서 풀긴 하지만..." 일에 있어 남녀가 따로 없다고 굳게 믿는 그녀지만 "결혼까지 한 남자들이 여성 점장 밑에서 일하는 기분도 이해한다"고 말한다. 박 점장은 가끔 외롭기도 하다고 했다. 그래서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때도 있다. 주량은 자신도 잘 모른다. 일만을 생각하는 박 점장 개인에게 최근 큰 경사가 있었다.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베니건스 전체 회의에서 세계 3백여명의 점장들 가운데 최우수 점장으로 선정된 것. 미국인들도 혀를 내두른 매출액이 큰 이유가 됐지만 철저한 직원 관리도 높이 평가됐다고 한다. 상을 받을 때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박 점장은 "정오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다소 고된 직업이지만 다양한 손님과 갖는 만남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녀의 꿈은 예상과 달랐다. "평범하게 결혼해서 살림을 하고 싶어요.정말이에요"라며 살며시 웃었다. 글=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