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급락하면서 정부와 외환당국이 직개입 여부를 놓고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다. 일방적인 하락세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이 28일 오전부터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시점이나 강도를 놓고 고민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시장도 정부의 직접 개입이 임박한 것으로 눈치채면서 서둘러 매도포지션을 닫기도 하는 등 긴장의 강도를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월말을 앞두고 점증하는 네고물량, 역외세력의 매도세 등으로 인해 시점이나 강도의 선택이 쉽지만은 않은 상태다. ◆ 부총리의 환율 걱정, 아직은 어정쩡 = 이날 전윤철 부총리는 국민경제자문회의 참석 후 일부 언론을 통해 "환율이 자꾸 하락해 걱정이다"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재경부 관계자가 확인했다. 그러면서 최근의 달러 약세·엔 강세 흐름과 다르게 "엔 강세가 현재 일본의 정책적 수단을 감안할 때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와 관련 재경부 관계자는 "일본정부가 현재 금리나 통화정책 운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수출을 통한 경기부양이나 디플레에 대한 방어 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엔 약세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취지에서 얘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은 이날 환율 동향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월말에 접어들면서 달러/엔 환율과의 상관관계가 무뎌진 채 수급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다소 '붕 뜬' 발언으로 인식될만한 소지가 다분한 것. 특히 심정적인 하락 경계감과 경제실상의 반영 사이에서 어쩡쩡한 입장 표명이 거듭됨에 따라 시장 심리를 더욱 하락쪽으로 기울게 했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오늘 환율 하락은 엔화와 무관하게 수급과 시장심리에 의해 주도됐다"며 "무역수지가 좋고 환율 하락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져서 달러를 사겠다는 사람은 실종되고 급하게 팔겠다는 사람만 나온 탓"이라고 말했다. ◆ 환율 급락 공감대, 정부 대책 마련중 = 그럼에도 부총리가 '자꾸 떨어져 걱정'이라고 솔직하게 말한 데서 보듯이 정부와 시장은 최근의 환율 급락정도가 심하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단 공기업에 대해 외채 조기상환과 함께 외화부채 유입시기를 늦춰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일정 조정과 장기적인 발행규모 확대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최근 구두개입만 거듭함에 따라 내성이 길러지면서 그 효과가 거의 나지 않고 있어 직접 개입 없는 '입심'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특히 급락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데도 정부가 '구두 경고'만을 할 뿐 강력한 조치를 미루고 있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하락추세를 액면 그대로 인정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득세하면서 투기성 매도도 한풀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은행은 대책을 마련하면서도 일단 실제 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정부와 환율 정책 협의를 계속하면서 분주하게 대책을 마련중"이라며 "개입의 때와 내용 등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나 공식적인 대책발표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재경부 고위관계자도 이날 '강도높은 대책'을 마련중이라는 언급을 했으나 환율 동향을 파악하면서 회의를 거듭할 뿐이다. 실제 이날 외환시장에서는 국책은행 등의 매수세 유입이 시장에서 간파되고 역외세력의 매수가 의심을 받고 있을 뿐 정부당국의 직개입 흔적은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고강도 개입 있을까 = 정부와 한국은행의 이같은 '침묵'에 대해 개입에 대한 부담인지, 아니면 개입 극대화를 위한 몸짓(제스추어)인 지 시장의 해석은 구구하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최근의 환율 하락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개입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며 "정부가 시중 물량을 보면서 개입 여부를 타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달러/엔이 정체돼 있어 이를 통한 상승 반전이 어렵고 월말이기 때문에 공급우위의 상황에서 구두개입으로 반등하면 매도세가 득세할 우려가 크다"며 "월말 지나고 조정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다른 은행의 딜러는 "수출업체만 죽어나고 수입 결제업체는 뒤로 물러선 상황에서 개입에 나서기엔 부담이 있다"며 "시중 물량이 어느 정도 흡수되고 물러서 있던 결제수요가 유입되면 정부가 직접 개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정부의 개입 경계감이 한층 강화되면서 달러매도초과(숏)상태를 닫는 세력들이 증가, 1,225원대로 급락했던 달러/원 환율이 단번에 올라 1,237.50원에 마감했다. 그러나 월말 네고장세를 맞아 공급우위 수급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이후 환율 변화는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단기적으로나마 예측이柰〈??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단 정부와 외환당국의 입장에서는 시장에 개입 긴장감을 고조시켜 매도세력을 이완시키는 고도의 심리전을 편 다음 월말 네고 효과가 꺾일 무렵 쯤의 시기를 노려 '한방'의 폭발력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현상황에서 보면 개입 효과는 개입시점의 달러/엔의 동향과 개입을 이용한 매도의 강도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문제는 역시 정부와 외환당국의 '한방'이 지속될 수 있느냐에 놓여 있다. 정부와 시장의 시각이 공감하면서도 교차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인 셈이다. 정부의 시장 직개입이 국제 금융시장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인 지에 대해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의 달러 약세 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향후 국내 펀더멘털의 강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원화 강세의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한경닷컴 이준수·이기석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