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벤츠 포르쉐 페라리,뭐든지 취급합니다.AS도 확실하죠"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E모터스. '수입자동차전시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5층짜리 가건물에 최근 '벤츠 S500'이 전시품으로 추가됐다. 판매가는 1억5천5백만원선. 벤츠의 한국 공식 딜러인 한성자동차에서 내놓는 가격(1억7천만원)보다 1천5백만원이나 싸다. E모터스 관계자는 "등록세와 취득세를 포함한 세금까지 합치면 최고 3천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며 AS에 대해서는 "벤츠와 BMW가 고장나는 것 보았느냐"고 어물쩡 넘어간다. 이처럼 외환위기 때 자취를 감췄던 '그레이 마켓'(합법적 암시장)이 부활하고 있다. 공식 딜러자격 없이 수입차를 판매하는 개인 수입상들이 최근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통경로나 AS책임소재가 불분명하지만 공식 딜러가 '원프라이스 정책'을 내세워 할인해주지 않는 점을 이용,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워 활약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성업중인 '그레이 상점'은 2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그레이 마켓'이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것은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국내 수입차 수요 때문이다. 국내 수입차 판매실적은 지난달에 1천3백71대를 기록,1년전보다 2배로 뛰었다. 수입차 업계는 올해 6년만에 처음으로 수입차 판매 1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간 1만3천대가 팔려 사상 최대 수입차 판매를 기록한 지난 96년의 경우 국내 그레이 상점은 1백여개에 달했었다. 이 시장에서 최대 인기 품목은 국내 수입차 시장점유율 1위(30%)인 BMW다. 김영은 BMW코리아 이사는 "고객은 97년식이라고 하는데 조회해보면 95년식으로 나오는 식"이라며 "정확히 집계가 안되지만 AS를 의뢰해오는 차량중 유통경로가 불명확한 경우가 발견된다"고 말했다. 비정상적인 통로로 유입되는 수입차들은 실질환율에 따라 가격조절이 가능하고 AS센터 건립 및 관리비용이 들지 않는데다 마케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정상가보다 최고 20%가량 싸게 팔린다. 문제는 AS와 리콜이다. 이들 그레이 상점은 일정기간 보증수리가 가능하고 제휴된 정비센터에서 유상으로도 AS를 해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레이 상점은 보통 수명이 짧아 문을 닫고 나면 AS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공식 딜러들은 "브랜드 이미지 관리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AS를 해주고 있지만 직접 취급하지 않는 모델인 경우 부품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레이 상점에서 팔리는 수입차는 2년씩 재고로 묶여있던 차가 신차로 둔갑하거나 홍수로 침수됐던 차량이 나오기도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지적이다. 이런 차들은 최종 판매지역이 추적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리콜 혜택을 못받는다. 수입자동차협회 윤대성 전무는 "그레이 상행위 자체는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므로 규제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전자제품이나 의류는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히는 순기능도 하지만 수입차는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역기능이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