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만 해도 시골의 어른들을 찾아 뵐 때,담배 한 보루 정도는 꼭 손에 들려 있었다. 담배가 마치 간식이나 보약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천식을 앓고 있는 어른들께도 담배를 드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담배에 대해서는 너그러웠던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건넬 경우에도 으레 담배를 권하며 말문을 열었고,신분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서조차도 담배 만큼은 귀천의 구분없이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초 일본에서 전래된 담배는 기호품이라기 보다는 민간요법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복통이나 치통의 진통제로,곤충에 물렸을 때는 치료제로,상처가 생기면 지혈제로 쓰였다. 소화가 안되고 한기를 느껴도 담배를 피웠고,민방에서는 담(痰)의 특효약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흡연은 일종의 멋으로까지 받아들여져 양담배를 피운다는 자체가 신분과시용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흡연은 급속히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며 금연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그동안도 담배의 해악을 홍보하며 금연을 강조해 왔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의 조사를 보면 지난 한햇동안 2백50만명의 남성 애연가들이 담배를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흡연자 5명중 1명이 금연한 것으로 금연확산속도에서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기업 관공서 학교 할 것없이 금연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면서 금연은 확고한 사회캠페인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 월드컵도 금연운동을 거들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02월드컵 축구대회를 '금연 월드컵'으로 선언,모든 경기장에서 흡연은 물론 담배광고도 일절 금지시켰다. 이런 공로를 인정해 세계보건기구(WHO)는 FIFA에 '담배규제 대상'을 주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월드컵이 개막되는 31일은 '세계금연의 날'이다. 어쨌든 월드컵이 금연운동의 큰 전기를 마련해 주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ba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