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내에는 새로운 '금융 파워'가 태어났다. 1998년 4월 출생신고 두 달만에 5개 은행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금융감독위원회와 99년 1월 통합 발족한 금융감독원이 주인공. 그 이전까지는 금융산업에 관한한 구(舊)재무부 이재국과 그 후신인 재경부 금융정책국이 무소불위의 행정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IMF 체제를 거치면서 이 권력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결국 재경부 금정국과 금감위.금감원으로 힘이 양분됐다. 법규는 금정국이 총괄하지만 금융회사에 대한 일반적인 감독.조사.검사는 금감위 지휘아래 금감원이 맡는다. 금감위와 금감원은 부실.위법한 금융회사의 생사여탈권을 쥔 것은 물론 일상적인 진료.진단(검사), 체력보강법과 영업방식(감독)까지 제시한다. 금융회사나 이용자까지도 이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붙잡아들여 수술(조사)한다. 바늘과 송곳, 수술칼과 톱까지 모두 갖춘 셈이다. 금감위.금감원의 힘이 이처럼 다양한 데까지 미치자 한때 관치금융의 총본산이었던 재경부도 "우리는 '금융 법제처'로 전락했다"며 '호시절'을 아쉽게 돌아볼 지경이 됐다. 금감위와 금감원은 위상과 성격이 다르지만 기관장은 한 사람이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한다. 금융업계는 물론 기업들에 대한 파워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게다가 금감위의 1급 공무원들이 금감원의 부원장으로 이동하고 금감원의 실무 전문가들은 금감위 각 부서에 골고루 파견나가 있다. 외부에서 보면 한 몸처럼 움직인다. 금감원의 강권석 부원장이 지난해말까지 금감위에서 증권선물위 상임위원(1급상당)으로 일해 왔고 앞서 김종창 기업은행장도 같은 코스를 밟았다. 금감위는 이 위원장과 유지창 부위원장 외에 정부 안팎의 위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매주 간담회와 정례회의를 번갈아 열면서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조사결과를 의결하고 감독 규정도 뜯었다 고쳤다 한다. 이 위원회를 보좌하면서 실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감독정책 1,2국. 금융관료로서 잔뼈가 굵어온 김석동 감독정책1국장은 이따금씩 "은행 외에도 2백만개 가량의 기업이 1국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한다. 이두형 국장이 맡는 감독정책2국은 현투증권 매각과 같은 업무에서부터 카드수수료,보험사 경영까지 들여다 본다. 금감위에는 70명의 공무원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재경부에서 분가해 나왔다. 그러나 재경부와 금감위 사이에 맺어진 양해각서(MOU)에 따라 두 기관은 공동 인사풀로 교환인사를 한다. 증시의 불공정 거래 단절을 위해 최근 발족한 조사기획과 직원 9명은 대개 금융실무에 밝은 금감원 출신들. 통합 3년5개월이 됐지만 금감원에는 아직도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이전의 출신별로 불꽃튀는 경쟁의식이 있다. 은감원 출신이 반걸음가량 앞서는 세(勢)를 형성한 가운데 증감원 출신이 어금버금으로 이를 견제하는 양상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보감원과 기금 출신들은 "부원장보 이상 간부중 우리쪽 출신은 전무하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인사철이면 27개의 본부 국.실장 자리를 놓고 이런 신경전이 더욱 치열해진다. 일선 금융회사나 기업들은 재경부나 금감위보다 금감원을 더 무서워한다. 은행이 예금을 어떻게 굴리고 부실기업이나 특정 기업에 돈을 많이 빌려주지는 않았는지, 증권사가 내부 정보를 이용한 거래를 하지 않았는지, 또 저축은행은 대주주에게 한도를 넘게 대출해 주지 않았는지 등이 금감원의 감독 대상이다. 1천5백여명의 금감원 직원들은 금융회사의 본.지점으로 늘 망원경을 대놓고 수시로 확대경까지 들이대기도 한다. 요즘 금감원 직원들은 공시감독국을 필두로 증권검사국 자산운용감독국 같은 곳을 선호한다. 각 금융권별 검사국 근무를 좋아하는 직원들도 많은 편. 최근 금감원 내에서 힘이 어디로 쏠리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은행.증권.비은행.보험감독국은 인기도가 떨어진다. 감독규정을 손질하고 금융회사 경영을 발전시키도록 '지도'하는 업무가 중요하지만 "골치아프게 규정이나 만지고 있느니 현장에서 오류도 찾아내고 실무까지 배우는 부서가 좋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신용감독국 같은 곳은 부실기업 처리를 지휘하고 조사 1.2국, 회계감리국 등도 불공정거래나 부실회계를 근절하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골치아픈 업무'라며 벗어나려 하기도 한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