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洋 < KAIST 테크노 경영대학원 교수 > 경기가 회복된다는 소리가 작년 말부터 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로 미국 경기의 회복 전망에 근거한 본격적인 경기회복론은 한마디로 설익은 기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재의 미국 경기와 그 전망에 대해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자세를 필요로 하는 징후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 성장잠재력의 위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그동안 내수 중심의 경기 부양과 함께 소비자금융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 돈 쓸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잠정적으로 지난 1·4분기에 5.8%라는 기대 이상의 성장을 보인 미국 경기는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낙관론을 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1·4분기의 높은 생산 증가는 경기후퇴기 이후 감소한 재고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재고조정에 의한 일시반등'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비투자와 민간소비의 증가 없이는 이러한 성장세가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동안 경기 하강 압력을 힘겹게 떠받치던 민간소비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주가 및 주택가격의 하락과 가계부채 증가 등이 민간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고,기업부문의 설비투자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낮은 금리 수준을 고려할 때 이는 기업의 이윤 전망이 불투명하고,정보통신 혁명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기술기회의 도래가 지연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위 닷컴기업에 물린 벤처캐피털들의 투자여력도 예전 같지 않고,설상가상으로 엔론과 GE 등 간판기업들이 회계조작 의혹에 휘말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기대보다 높게 나타난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을 두고 기업 이윤이 곧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일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경기후퇴기의 끝 무렵에는 기업들이 신규고용 없이 기존 인력의 노동강도를 높이기 때문에 종종 노동생산성이 높게 나타나게 된다. 설사 실질적인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있다 해도 그 효과가 기업의 이윤 증가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 치열한 기업간 경쟁과 인터넷을 이용한 소비자의 가격 비교 등으로 그 효과의 대부분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불투명한 미국 경기와 여전히 회생의 기미가 없어 보이는 일본 경제를 앞에 두고 국내 경기의 호전과 기업이윤의 증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외면적인 경기변화에 매달려 자칫 경제문제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보다는,소위 4대 부문 구조조정의 마무리를 서둘러 선언하고는 서비스업 중심의 내수진작을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선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기술 중심의 경제에서는 통화량과 이자율 등 금융적 수단의 경기대응 능력이 크게 낮아지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단기적이고 표면적인 경기대응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인 기술주기 변화에 의한 경제의 큰 흐름을 주시하면서 이에 대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소위 신경제 현상과 외환위기 경험은 기술경쟁력을 중심으로 한 실물 중시의 경제운용 패러다임이 필요함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지난 경제위기는 심화되는 기술경쟁 속에서 실물부문의 경쟁력이 취약했기 때문이며,이는 95∼97년 4백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가 말해주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도 금융 논리가 득세하면서 기업 등 실물 부문의 목소리는 미약했고,정부조직도 금융 관련 부처의 위상 강화 속에서 실물과 기술 관련 부처의 위상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약해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는 경제의 순환과 기업의 투자가 금리와 통화량보다는 기술기회 등 실물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점과 장기적인 실물 중시 경제운용이 불확실한 경제환경에 대한 최선의 대응전략임을 인식해야 한다. 다음 정부는 내수에 의해 수출이 등한시되지 않고 금융부문에 의해 기업 등 실물부문이 소외되지 않는 균형있는 경제운용 패러다임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drcylee@kgsm.kaist.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