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 부리지 않고 사심이 없다는 점 때문에 다시 큰 일을 맡겨준 것 같습니다." 지난 17일 취임한 강동석 한국전력 신임사장의 첫 마디다. 강 사장에게선 단군 이래 최대역사로 꼽히는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8년간 진두지휘했던 맹장 같은 인상을 찾기 어려웠다. 자신의 말처럼 정말 요령이 없는 것일까. 공항 개항식때 임원들과 함께 대통령이 주는 공로표창을 받지 않겠다고 결의해 결국 수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 사장은 신중하고 깔끔한 업무스타일로 유명하다. 올라온 서류는 꼼꼼히 다 읽어본 후 결제한다. 외모로는 더 없이 인자해 보이지만 열심히 일한 직원들은 어깨를 쳐주고 설렁설렁 일한 직원들에게는 혹독한 질책을 가한다. 이런 방식으로 조직을 빠른 시간내에 장악해 강한 추진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민영화작업이 막 시작된 한국전력의 총사령탑에 취임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황량한 영종도에 인천공항을 세워 나갈 당시 발휘했던 추진력을 되살려 보라는 주문을 받은 것이다. 강 사장 자신도 "발전소 매각및 배전부문 분할을 통한 민영화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민영화에 힘입어 사회적 비용이 낮아지고 서비스가 더 좋아진다면 밀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요령 부리지 않고 우직한 추진력으로 일에 전념했던 흔적은 과거 인천공항 건설과정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건설업체들과 직원들을 다루는 현장에서는 철저한 원칙주의를 유지했다. 인천공항 건설을 담당한 신공항건설공단은 본래 본사가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 있었다. 하지만 공항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본사를 영종도로 옮겼다. 현장의 건설업체 직원들과 신공항건설공단 직원들이 밤에 숙소에서 술 마시고 노름(고스톱)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사장이 현장에 없으면 공사장의 긴장감이 풀어져 죽도 밥도 안되겠더군요. 이전 즉시 노름과 음주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다음날 업무능률을 올리고 안전사고를 없애자는 목적이었습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의 현장독려는 갈수록 강도가 높아갔다. 1996년 9월엔 아예 자신의 주소를 안양시 평촌에서 공사현장인 영종도로 이전했다. 컨테이너 박스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공사현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독하면서 현장 건설업체들의 하도급 구조를 바꿔 놓았다. "하루는 덤프트럭 업자 2명이 사무실 앞마당에 자갈을 잔뜩 부려 놓고 도망갔어요. 사정을 캐보니 인건비가 두세달 밀린데다 그것도 어음으로 지급받아 화풀이를 했다는 겁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신공항건설공단측에서는 원청 건설업체에 공사대금을 현찰로 지급했는데 개인 덤프트럭 업자 등 하도급 업체들은 어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음이 부도라도 나면 공사에 차질을 빚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그는 "현찰로 하도급업체와 정산하지 않으면 신공항측도 공사대금 지급에 애를 먹일 것"이라고 원청 건설업체들에 으름장을 놓았다. 암행조사는 물론이고 구내식당에 대자보까지 붙였다. '인건비, 장비 사용료 등을 현금으로 받지 못하면 사장실, 감사실에 신고하라. 신고자는 신분보장을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만나는 원청업자들에게는 입이 닳도록 "당신들 연말이면 교회 가고 성당 가서 불우이웃을 위해 기도하지 않느냐. 기도 열번 하느니 불쌍한 현장근로자들 돈이라도 제대로 줘라. 하느님이 점수 더 주실거다"고 설득했다. 그는 현장에서 부실공사란 단어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다. '00년 부실공사 방지의 해'라고 입간판을 설치하면 불호령을 내렸다. 그전까진 부실공사만 해 왔다고 떠벌리는 것이냐며 건설업체마다 다른 표어를 걸도록 했다. '기술의 00사' '혼을 담은 시공' 등으로 자신들이 담당한 공사에 자부심을 갖도록 했다. 그는 인천공항을 개항할 수 있었던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5조6천억원이나 투입된 공사이다 보니 참여하지 못한 사업자들의 청탁과 로비, 모함 등이 난무했지요. 그러나 한 사람의 직원도 독직하지 않았습니다. 사장의 의지를 따라준게 너무 고마워요." 그는 한전 역시 그렇게 지휘하고 싶다고 한다. 한전 기업문화와 직원들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돼 불합리한 점은 과감히 개혁해 나가겠다는 의지다. 강 사장은 "민영화는 최종 소비자가 A전기회사, B전기회사를 선택하도록 보다 완전한 경쟁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라며 "아파트단지내 고속통신망 설치경쟁이 설치료를 낮추고 서비스 개선을 가져 왔다"는 예를 들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민영화는 시속 5km, 10km 하는 식으로 페이스를 조금씩 조절해 가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향후 예정된 배전부문 분할의 경우 1년동안 분할 테스트기간이 주어져 있어 문제점을 보완하면 된다는 것. 그는 앞으로 전기산업이 국경없?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발전, 송전능력과 기술을 키우면 전력수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중 중국이 주요 수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중국경제가 급성장, 전력부족이 예상되기 때문이란다. 그는 이런 중장기적인 비전제시와 함께 발전.배전부문 분리및 민영화로 인한 한전맨들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일도 신임사장의 1차적 임무임을 잊지 않았다. 아울러 "정도(正道)가 가장 마음 편하다"며 "요령 부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면 접촉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 < 약력 > 38년 전북 전주 출신 전주고, 경희대 법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졸업 65년 제3회 행정고시 합격 79년 교통부 관광국장, 도시교통국장, 육운국장 87년 민정당 교통.체신 전문위원 87년 교통부 기획관리실장 92년 해운항만청장 93년 교통안전진흥공단 이사장 94년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 99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2002년 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