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信和 < 고려대 연구교수 / 국제정치학 > 얼마 전 중국 선양의 일본총영사관 탈북자 연행사건을 둘러싸고 중·일 양측이 엇갈린 주장으로 대립하고 있는 와중에,아나미 고레시게 주중(駐中)일본대사가 진입사건 발생 직전에 "탈북자들이 들어올 경우 쫓아내라"고 지시했다는 설이 보도됐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인권보호 및 인간안보를 핵심 외교과제로 공표해 왔으면서 정작 탈북자의 인권문제에 자국이 연루되자 등을 돌린 이중적 행태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이들 탈북자 5명이 전달한 망명희망문서를 총영사관 부영사가 거부한 사실을 외무성이 은폐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져 일본외교의 도덕성과 공신력이 추락했다. 이번 선양사건을 계기로 최근 중국에서 잇따르고 있는 탈북자의 신변처리문제,난민인정을 위한 국제난민법의 한계와 접수 재량문제,재외 탈북자에 대한 정황 파악문제 등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소 몇만명에서 최대 30만∼40만명으로 추정되는 탈북자들은 언제 북한으로 강제송환될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갖가지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보호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현행 국제법상 정치적 이유로 인해 국적국 밖으로 탈출한 사람만이 합법적 난민이며,기근(비정치적 이유)으로 자국을 탈출한 북한주민은 국제난민조약에 따른 보호대상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민 신청자의 실질적 보호여부는 이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접수국의 결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설혹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탈북자들에게 난민판정을 내려 국제법적 보호를 부여한다고 해도 모든 탈북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분류해 이들을 강제송환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중국내 탈북자 보호의 실효성은 극히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난민기피 현상은 중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나라에서 확산되고 있는 외교적 님비(NIMBY) 현상으로 보여진다. 선진국들도 표면상으로는 탈북자문제의 인도적 처리를 강조하면서도,막상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자국에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한결같이 냉담하다. 이번 선양사건도 중국과의 외교마찰이나 중단상태에 있는 북·일 수교회담을 재개하려는 일본정부의 노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탈북자들이 재중 해외공관을 탈출구로 삼는 '기획망명' 사태가 늘어나면서 종전까지 남북한과 중국 사이의 문제에 그쳤던 탈북자문제가 국제공론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UNHCR나 여러 국가들 사이에 탈북자 북한송환반대와 인도적 처리라는 2대 원칙하에 탈북자 중 망명을 원하는 자에게 망명신청의 기회는 부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게 되었다. 끝으로 탈북러시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이들의 원만한 처리문제를 중요한 외교과제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정부는 차제에 탈북자 문제에 대한 정부당국의 기본 입장을 정리해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당면하게 되는 외교적 고민이나 마찰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 국제상황에서 탈북자들의 난민지위여부 문제에 대한 논의는 장기적인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탈북자들이 중국이나 제3국에 머무를 때 난민여부를 가리는 것보다,우선 식량과 피난처를 제공함으로써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보여진다. 또 탈북자들에 대한 국제사회나 한국정부의 원조규모 설정 및 UNHCR의 일시보호 대상자 판정 등 보호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한편 NGO 및 학계 등의 산발적 노력을 조정·통합해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탈북자 보호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한국정부는 국제기구,국제NGO 및 유관 국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탈북자관련 다자간 협력기구를 설치해 정보교환,재정부담 등 국제적 연대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우리의 노력에 탈북자들의 생존문제가 걸려있다. swlee@kore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