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미·영·소 3국회담은 그야말로 소련의 독무대였다. 이 회담에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영국의 애틀리 총리가 참석했는데 루스벨트와 처칠 후임으로 등장한 이들 지도자는 취임한 지 얼마 안돼 국제적인 식견과 노련미가 부족했다. 그래서 소련의 스탈린이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전후처리문제를 주도할 수 있었다. 이때 결정된 것이 동·서독 분단이고 베를린의 분할이었다. 이후 48년 서방국가들이 서베를린에 새로운 독일 마르크화를 도입하자,소련은 그해 6월 이를 동독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동독에 위치한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모든 육로와 항로를 봉쇄해 버렸다. 이에 맞서 서방측은 다음해 6월까지 11개월 동안 무려 28만회에 이르는 공수작전으로 1백40만?의 식량과 생필품을 수송한 끝에 결국 소련의 무모한 시도를 꺾을 수 있었다. 이 '베를린봉쇄'기간중인 49년 4월 미국을 비롯한 12개국이 똘똘 뭉쳐 탄생시킨 집단 지역안보기구가 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였다. 따라서 NATO의 주적(主敵)은 소련일 수밖에 없었다. NATO가 창설 50여년만에 러시아와 동반자가 되어 국제테러를 포함한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NATO-러시아회의(NRC)'를 설치키로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이로써 옛 소련 붕괴 이후에도 가시지 않았던 냉전적 구도가 완전 종식된 셈이다. 그래서인가. 세계 언론들은 이번 합의를 두고 "냉전의 장례식을 치른 것"이라느니 "냉전을 땅에 묻었다"느니 하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고 말하지만,서방세계와 러시아의 만남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들 정도이다. 오랜 기간 사회주의의 맹주로 군림하며 지구의 반을 호령하던 소련이 연방으로 해체되고 서방세계와 호흡을 같이 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이념대립은 사라졌다고 하나 이제는 '테러'라는 이름의 병기가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정녕 항구적인 평화는 없는 것인가.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