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영토 확장' 전쟁이 불이 붙을 조짐이다. 최근 공기업 민영화와 함께 거대 부실기업들의 잇따른 정상화로 기업매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IMF사태 이후 외형 경쟁을 자제해왔던 재계가 속속 인수전에 뛰어들고 있다. 자동차 전문그룹을 선언한 현대차그룹을 제외하면 재계서열 5위권내의 삼성 LG SK 롯데 등이 모두 나서고 있다. 물론 과거처럼 '문어발식 확장'은 아니다.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호전된 기업실적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한 다각화의 성격이 강하다. 정권 교체기와 맞물린 인수·합병(M&A)전은 차세대 재계의 서열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성=지난 몇년간 하이닉스 등 부실 대기업들의 단골 인수처로 거론돼왔지만 단 한번도 응하지 않았던 삼성은 KT 민영화에는 강력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 9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은 "KT에 지분 참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삼성의 실제 속내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지분매입에 나서지 않겠지만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를 통한 투자는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통신장비의 최대 수요처인 KT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향후 KT의 경영권까지 확보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LG=대그룹들 중 가장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 SK와 마찬가지로 어떤 형태로든 KT 민영화에 발을 들여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계열사인 데이콤은 지난달 한국전력 자회사인 파워콤에 입찰참가 의향서를 제출했으며 LG칼텍스정유는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와 가스공사의 자회사 인수전에 참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LG화학은 현대석유화학 인수를 통해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으로 국내 최대 석유화학기업으로의 부상을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칼텍스 필립스 등 해외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와 비핵심 계열사들의 매각을 통해 어느 정도 '실탄'을 확보해놓은 것이 강점이다. ◆SK=한때 그룹내에서 비중을 축소해온 화학사업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LG와 마찬가지로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해 현대석유화학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최근 화학부문의 경기가 호전되고 있는데다 현대석유화학이 비교적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어 SK(주)와의 시너지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자회사 민영화에도 나설 예정이어서 LG와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롯데=현대석유화학을 일찌감치 점찍어 뒀다가 LG SK의 발빠른 추격에 당황하는 기색이다. 채권단이 인수를 종용했던 지난해 하반기에 뜸을 들이다 시기를 놓친 점을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화학사업 외에 '유통왕국'으로서의 면모에 걸맞은 M&A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미도파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한데 이어 이달중 인수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인 대한통운에도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세계 제일제당 등의 경쟁기업들보다 현금동원력이 뛰어나 유리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