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은 과연 그룹 내에서 어떤 형태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4명의 총괄사장들은 윤종용 부회장과 함께 최측근에서 보좌해 왔기 때문에 이들만큼 회장을 잘 아는 인물들도 찾기 힘들다. 이들이 꼽는 이 회장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리더십과 선견력(先見力).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들어 낸 핵심 요인이란다. 단기 실적주의에 빠지기 쉬운 최고경영자(CEO)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장기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한용외 사장). 단기적 안목에 치우치는 미국식 경영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본기업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삼성만의 경영방식을 정착시켰다(이윤우 사장)고도 말한다. 불황에도 위축되지 않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 경쟁기업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이윤우 사장은 1984년 D램 2라인 건설 당시 미검증된 6인치 웨이퍼를 선택해 일본업체와의 격차를 줄인 것을 단적인 예로 거론했다. 반대로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자만심을 경계하도록 채찍질하는 등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진대제 사장)이다. 진 사장은 지난달 19일 열렸던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사장단을 '대표해'혼이 났다고 한다. 이 회장이 "소니의 홈시어터 시스템을 소상히 아느냐"는 질문과 함께 시장의 흐름에 둔감해서는 안된다며 질책을 가했던 것. 이들은 제품에 대한 이 회장의 안목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소비자가 어떤 생활반경과 동선(動線)을 가지고 있느냐는 관점에서 제품을 구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제품론(이기태 사장). 신제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이 회장의 테스트를 받아야 하며 제품을 보여주자마자 이 회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