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면 얼마만큼 사랑해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여자가 하루에 하는 일 중에 몇 가지는 식구들을 사랑하는 일이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수돗물을 받아서 가라 앉힌다. 수돗물에도 불순물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몸에 해로운 약품성분도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큰그릇에 받아 놓았다가 식구들이 그 물로 양치도 하고 세수도 하도록 한다. 다음에는 그 날 하룻동안에 먹을 쌀을 목판에 놓고 고른다. 뉘도 골라내고 반동강 난 쌀알이나 깨진 쌀알을 골라낸다. 온전한 쌀로만 밥을 짓는다. 사랑하는 식구들이 먹는 아침밥을 아무렇게나 지을 수는 없다. 그 밥도 식구들이 일어나 밥상에 앉는 시간에 맞춰 뜸을 들인다. 밥그릇에 담아내는데 지금 방금 담은 밥을 먹도록 시간을 잘 맞춘다. 그 집엔 전기밥솥은 물론 보온밥통이라는게 없다. 재래식 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알맞게 밥을 눌려야 밥도 맛있고 숭늉도 끓일 수 있다. 아침마다 대문 앞 골목을 깨끗이 쓸어 놓는다. 식구들이 발자국 안 난 깨끗한 길을 밟고 밖으로 나가도록 한다. 식구들이 밖에 나가서 하는 일마다 잘되라고 정성을 들이는 셈이다. 그 여자는 남편의 옷만은 세탁소에 직접 찾으러 간다. 바지를 접어서 옷걸이에 걸어오는 걸 견딜 수가 없다. 접힌 자리가 생기는 것도 싫고, 그 보다 바지를 반으로 접으면 왠지 남편의 하루가 답답하고 불편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허리 부분을 잡고 길게 늘어뜨려서 들고 온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미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을 사랑의 방법으로 본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다음에 할 일은,그 여자네는 두가지 신문을 보는데 식구들이 알아야 할 기사를 골라서 비닐케이스에 끼워두는 일이다. 화장실에 걸어두기도 하고, 응접실이나 침실에 놓아두기도 한다. 또 메모지에 음식이름을 적거나 음식사진을 오려서 냉장고문에 붙여둔다. 식구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 음식이 먹고 싶다는 의견이 있으면 곧 만들어 먹는다. 반응이 없으면 다른 음식으로 바꿔서 시도해 본다. 친구들은 그 여자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피곤하겠느냐고 동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이 있다면 그것이 피곤한 일이 될 리가 없다. 그 여자는 옷도 제 마음대로 사 입지 않는다. 이제 옷 정도는 마음대로 골라 입을 만큼 나이가 꽤 됐는데도, 식구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지 의견을 묻곤 한다. 식구들중 의견이 달라 찬반이 섞인다면 그 옷은 입지 않기로 한다. "내 마음이야"라는 말은 식구들 사이에 벽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안에서 식구들을 밖으로 내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관없어'라는 노랫말이 한창 유행인 이 세상에 살면서 그 여자는 그 말이 얼마나 딱하게 느껴질까. 오히려 사람들은 그 여자를 스스로 어렵게 살면서 덫을 만들어 가는 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여자의 표정엔 언제나 행복이 넘치고 있다. 그 여자가 돈을 아끼지 않는 경우가 딱 한가지,그건 과일이나 야채를 살 때다. 그 가게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산다. 제일 비싼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싱싱하고 제일 잘 생긴 것이기도 하다. 좋은 야채, 좋은 과일은 농부의 손길과 정성이 훨씬 더 많이 담긴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손길과 정성은 먹는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고, 보다 좋은 삶을 살아가는데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여자는 2등급 사과 다섯개보다는 1등급 사과 세개를 사는 '사치'를 하며 행복으로 안다. 그 여자는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다. 혼자서 책 읽고 음악 듣고 식구들을 사랑하는 몇가지 일을 찾아 움직이다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거리는 항상 교통난이다. 밖에는 할 일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아이도 집 밖에서 떠도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생의 소중한 시간이 집 밖에서 새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겠지….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는 색깔과 맛과 향기가 다 다르다. 누구한테 주느냐에 따라서 색깔 맛 향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