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m@case.co.kr 월드컵 준비 상태를 기획,보도하는 TV 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내용인즉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규모가 큰 국제행사인 점을 감안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때 전국의 관광 명승지들이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어 우리 나라를 찾을 외국 손님에게 불쾌감을 줄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무슨 국제적 행사만 있을라치면 으레 한번쯤 방송되는 내용이라 생각없이 지나치려는데 곁에 있던 아들 녀석이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아빠! 낙서가 그렇게 나쁜 건가요" 가벼운 반박이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많은 유물들 중 일부는 그저 낙서로 시작되었을 뿐 그 당시 무슨 예술작품을 그린답시고 행해진 행위는 아닐 테니 말이다. 해외를 나가 봐도 유명한 유적지나 명소치고 낙서 없는 곳이 거의 없다. 낙서는 우리만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일 것이다. 사람은 대개 낙서를 좋아한다.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책이나 책상,남의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학창시절 화장실 낙서는 정말 흥미진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공중도덕'이라는 큰 깃발 아래 낙서를 혐오하는데 길들여져 있다. 그러면서도 그 깨알같은 낙서,휘갈긴 글을 탐독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다면 이 참에 생각의 관점을 달리해 보면 어떨까. 인간의 본원적인 욕구 자체를 금지시켜가며 온 국민을 '몰상식'한 사람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아예 낙서를 건전한 방향으로 장려하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낙서를 생각의 건강한 배설창구로,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한 방법으로 보자는 것이다. 근대 미학(美學)의 본류가 '질서와 정돈'이었다면 현대 미학의 유행은 '자유와 일탈'이 아니던가. 세계적 작가인 백남준 같은 이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낙서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세상은 '창조와 아이디어'가 화두(話頭)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질서와 통제를 근간으로 구속하고 금지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창조와 아이디어'가 자라날 수 없을 것이다.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과 아이디어의 수용은 이제 개인육성 차원을 떠나 사회적인 분위기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이런 보도를 듣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좋은 명소에 낙서하나 없다니 이상하군요.찾읍시다! 우리의 정서와 생각의 자유를" 또한 월드컵을 개최하는 국가의 위상과 비교해 국민의식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어 유감스럽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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