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휴대폰용 액정화면 세계시장 점유율 2위(삼성SDI),편향코일(DY)·고압변성기(FBT)·튜너 세계 1위(삼성전기). 삼성SDI와 삼성전기의 2002년 성적표다. 지난해 삼성SDI는 4조원,삼성전기는 3조원,삼성코닝은 8천6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SDI의 순익(5천5백억원)은 국내 상장사 중 14번째로 많았다. 삼성전자가 5년 사이 외형을 75% 불리는 동안 삼성SDI와 삼성전기도 각각 53%,77%씩 몸집을 키웠다. PDP 2차전지 등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는 삼성SDI는 최근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면서 원가는 30% 이상 낮춘 컬러 휴대폰용 액정화면 UFB-LCD를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삼성전기는 2010년까지 세계 1위 부품 메이커가 된다는 목표를 공표하고 구조조정과 기술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에겐 세계적 모니터(세계시장 점유율 1위) 및 휴대폰(3위) 메이커인 삼성전자를 거래선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게 든든한 뒷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설립 초기엔 품질이 좀 떨어져도 계열사들이 만든 부품을 모두 사줬다. 덕분에 이들은 일찌감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매출을 키우고 설비 확충과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면서 고속 성장할 수 있었다. 인터브랜드가 64억달러(세계 42위)로 평가한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삼성전자와 공유하는 것도 큰 혜택이다. "부품을 새로 개발했을 때 애니콜에 들어간다고 설명하면 해외 거래선에 접근하기가 쉽다"(김재조 삼성전기 상무) 하지만 삼성SDI와 삼성전기의 매출액 중 60%는 삼성전자와 무관한 수출에서 나온다. 이들의 경쟁력이 단순히 삼성전자 후광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삼성SDI는 세계 5대 PC메이커를 모두 장기 거래선으로 잡고 있다. 배철한 삼성SDI 부사장은 "삼성전자는 우산이 아니라 채찍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 기술 수준으로 수율이 50%일 때 삼성전자는 95%에 맞춰 상품 기획안을 들이밀었다.그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 기술력이 경쟁사보다 앞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계열사들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후 삼성전자가 요구하는 품질과 가격 수준은 매우 엄격하다. 김재조 삼성전기 상무는 "삼성전자는 납품하기가 가장 어려운 거래처다.설계부서에서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요구하고 구매 부서에서는 세계 최저 가격에 달라고 한다. 설계를 어렵게 통과했더라도 구매에서는 가격이 높다며 처음부터 다시 입찰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요구의 배경에는 일등주의 철학이 깔려있다. 특히 양에서 질 위주로 경영방침을 바꾸겠다는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전자가 부품 계열사들을 인큐베이터에서 내보내고 경쟁 부품사와 똑같은 품질과 원가 기준을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은 당시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에서 계열사 임원 2백여명을 모아놓고 밤샘 마라톤 회의를 주최했다. 삼성전자에서 정보통신을 총괄하는 이기태 사장이 이날 모토로라를 능가하는 세계 일류 휴대폰을 만들겠다고 눈물로 맹세했다는 일화는 그룹내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