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은행 경기 신장지점 이갑수 지점장. 그는 출근하자마자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실 너댓 곳을 먼저 들른다. 아파트를 매매하는 사람중 대출 수요자를 찾기 위해서다. 신장지점은 아파트단지 상가안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개인고객 점포다. 인근에 변변한 중소기업 하나 없다. 따라서 대출을 늘리려면 아파트담보대출을 세일하는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선 공인중개사의 소개를 받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이 지난 1년여 동안의 경험이다. 비단 이 지점장만이 아니다. 다른 은행, 다른 지점장도 마찬가지다. 요즘의 지점장들은 피말리는 대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 지점장들이 수신경쟁에 몰려 '예금 사오기'라는 편법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정반대의 현상이다. 이는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지점 평가시스템 변경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엔 여유자금이 쌓이고 있다. 반면 자금을 운용할 데는 마땅치 않다. 그러다보니 대출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한빛은행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라는 영업점 평가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1천점 만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위험조정 영업이익'으로 배점이 4백점이나 된다. 이익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이 '여신 증가'다. 1백50점으로 배점 비율이 15%에 달한다. 반면 수신 증가는 겨우 50점(5%)에 불과하다. 여신 증가의 기여도가 수신 증가의 기여도보다 3배나 높다. 뿐만 아니다. 정기예금을 유치할 경우 남는 이익은 고작 0.2% 정도다. 이에 비해 대출을 취급하면 0.6% 가량이 이익으로 남는다.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수신보다는 여신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면 지점 평가점수의 50% 이상이 여신에서 나오는 셈이다. 비단 가계대출만이 아니다. 기업은행 원주지점 정세현 지점장. 그는 얼마전 한 중소기업을 두고 다른 시중은행 3~4개와 힘든 경쟁을 벌였다. 경쟁적으로 낮은 대출금리를 제시하면서 이 기업에 대출을 해주려는 은행들을 따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기업은행의 지점장 평가시스템도 한빛은행과 비슷하다. 지점 이익이 전체의 50%를 차지하고 대출이 25%에 달한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개인 고객이든, 기업 고객이든 대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지점장들이 무턱대고 대출을 늘리는 건 곤란하다. 철저한 독립채산제인 데다, 부실이 발생할 경우 나중에라도 그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한다. 부실을 최소화하면서 대출을 최대한 늘리는 것-대출세일시대를 살아가는 지점장들에게 주어진 지상명제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