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스산업은 1980년대 중반 천연가스를 처음 도입한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천연가스 도입 초기에는 인수기지와 배관망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국가가 가스산업을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공기업이 자연스럽게 도입·도매부문을 독점하는 구조를 갖게 됐다. 즉 도입·도매부문은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담당하고,소매는 지역별로 독점적 성격을 갖는 민간 도시가스회사들이 맡게 된 것이다. 문제는 가스산업이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경직적인 구조를 지속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사업의 특성상 도입부문에서는 연중 동일한 규모의 물량을 고정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그런데 소매부문과의 거래에도 그러한 경직성이 이어지고 있다. 도매회사인 가스공사는 도입한 가스를 다음 단계인 소매사업자들에게 팔아야 한다. 이들은 가정용과 업무용 산업용 등 다양한 수요처에 가스를 판매하는 회사이거나,전기로 전환시켜 판매하는 발전사업자들이다. 이들이 도시가스회사든 전력회사든 독점사업자간의 거래인 탓에 시장기능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지 못한다. 따라서 거래가격은 정부가 결정하게 된다. 형식적으로는 정부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실제로는 정부가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가스산업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충격을 줄 요인이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한전의 5개 발전자회사를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영화된 발전회사들은 값비싼 연료(발전용 가스)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구입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남는 가스를 정부가 정한 가격에 전량 발전용으로 소진하는 것은 전력시장이 공기업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되는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도시가스를 겨울에 많이 쓰고 여름에는 적게 쓴다. 여기에서 수급 구조의 문제가 생긴다. 겨울에는 모자라지만 여름에는 막대한 물량의 가스가 남는다. 발전부문에서 남는 물량을 소화해 주지 않으면 시장 수급이 전혀 맞지 않게 된다. 즉 전력산업의 구조가 개편되면 지금의 거래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거래방식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고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가스산업에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력 소매사업에 진입장벽이 없어지고 새로운 소규모 발전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경우 새로운 기술을 응용한 소규모 분산형 발전사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발전방식은 천연가스를 연료로 써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전용 가스가격의 하락과 더불어 천연가스의 새로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신규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에너지산업의 구조개편을 촉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스산업은 외견상으로는 안정된 구조를 보이지만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다. 현재의 구조에 안주하기에는 외부 여건이 너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이 진행되면 현재와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가스산업 구조로는 급속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가스산업의 여건 변화 가운데 또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수요자와 공급자간의 주도권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가스시장은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점차 소비자가 힘을 발휘하는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외국에서 가스를 전량 도입하고 있는 국가로서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가스산업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 할 준비를 해야 할지,아니면 지금의 기득권 안에서 안주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구조개편안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재검토하고 공정한 룰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진행중임을 고려하면 가스산업 구조개편에 주어진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