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경기도 수원의 삼성전자 단지에 들어선 지상 25층,지하 4층의 정보통신연구센터. 연면적 4만평 규모의 이 건물은 무선랜을 포함,기가(Giga)급 광통신 네트워크 시스템과 랜폰(LAN Phone) 및 VOD시스템,웹 CCTV 등 최첨단 시설이 설치돼 있다. 외관은 자외선 차단유리로 이뤄졌다. 외부인은 물론 연구원이라도 지정된 곳 이외를 출입하면 자동으로 보안시스템에 체크된다. 이 곳에 입주해있는 R&D 인력만 4천2백명. 외환위기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인 지난 99년 착공된 이 건물은 공사비만 3천억원이 투입됐다. "통신연구소는 반도체를 포함한 부품,멀티미디어,통신기술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분당 기흥 수원 서울에 흩어져 있는 각 연구인력을 묶어놓은 것이다"(천경준 부사장) 시스템LSI(비메모리반도체) 연구를 위한 SOC(System on Chip)연구소도 이 건물 안에 있다. 바로 앞에 디지털미디어연구소가 있고 종합기술원과 반도체연구소도 차로 15분 이내 거리에 있다. ◇지식재산권을 기업 최고의 자산으로=지난해 삼성전자가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 등록한 특허건수는 1천4백50개. IBM NEC 캐논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이어 5위다. 99년 이후 3년 연속 특허 등록이 많은 10대 기업에 랭크됐다. 10위권 내에 속했던 도시바 루슨트테크놀로지 모토로라 등은 20위권으로 밀려났다. 꿈의 통신으로 불리는 IMT-2000과 관련,삼성전자는 동기식 비동기식 분야에서 각각 세계 4위권의 기술수준을 확보하고 있다. 40여건의 관련기술이 표준기술로 채택됐다. 삼성전자는 지식재산권을 최고의 기업자산으로 간주하고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R&D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전체 R&D 인력은 1만7천명으로 전체 임직원 4만8천명의 30%가 넘는다. 이중 박사급만 1천2백명이다. 미국과 일본 영국 인도 러시아 등 8곳에 해외 R&D센터를 두고 7백명의 개발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문의 경우 전체 임직원 9천5백명 중 절반 가까운 4천5백명이 R&D 인력이다. 엔지니어가 곧 생산자인 셈이다. D램에 이은 차세대 캐시카우(cash cow)로 부상하는 시스템LSI 부문은 삼성이 미래를 걸고 투자하는 분야다. 이 사업부문은 2000년 매출 2조원에 8천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무선기기용 모뎀과 디지털TV 셋톱박스용 칩 등의 개발을 위해 통신연구소와 디지털미디어연구소에 1백명이 넘는 핵심연구인력을 지원하면서 R&D 센터역할을 하는 SOC연구소도 시스템LSI에 속해 있다. 현재 1천7백명 수준인 연구인력을 조만간 3천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임형규 사장은 "특허 순위,세계 표준화 기술 등에서 세계 톱 5 진입이 가시화될 수 있는 상황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R&D,미래를 위한 씨앗=삼성전자는 매년 전체 매출의 7% 이상을 R&D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올해는 8%로 늘려잡았다. 금액으로는 99년 1조6천억원,2000년 2조1백90억원,작년 2조4천1백82억원으로 매년 20% 이상 증가하고 있다. D램 사업은 지난 83년 64KD램을 개발했을 당시 선진기업과의 기술격차가 4.5년이었다. 85년 2백56KD램에서 이를 3년으로 줄였다. 94년 16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격차를 제로로 만들었다. 10년 동안 천문학적인 액수의 기술개발과 시설투자비를 쏟아부은 결과였다. 지난해 영업이익 1조3천7백41억원을 달성,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59%를 차지한 정보통신부문의 경영성과도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의 산물이었다. 88년 휴대폰 개발을 시작했지만 애니콜이 탄생한 것은 94년이었다. 당시 모델명은 SCH-770. 7번째에 제대로 된 제품이 나왔다는 의미다. 휴대폰 사업부의 엔지니어들 중에는 15년차 이상 고참이 많은 것도 10년 후를 내다보는 삼성의 R&D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매달 한 번 열리는 전사 CTO(최고기술경영자)회의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3∼4년 후,멀게는 10년 이후 사업화될 기술이다. ◇디자인,삼성 정체성(identity)의 실현=삼성전자의 플립업휴대폰(모델명 SCH-3500)은 단일모델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6백만대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미국 CDMA 시장점유율 28%를 차지했다. 대당 1백50∼1백80달러로 노키아 모토로라의 동종기종(1백∼1백20달러)보다 비싼데도 불구,이처럼 히트를 한 비결은 삼성의 디자인 뱅크(Bank)제 덕분이었다. 디자인경영센터의 3백7명 디자이너들은 연간 7백개의 제품 모델을 개발,3차원 캐드(CAD)시스템을 통해 샘플을 만들어 놓는다. 수만가지의 제품 디자인을 미리 설계하고 이를 조합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디자인 능력은 IDEA(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로부터 최근 5년간 16개 제품이 우수디자인상을 수상,미국 애플사와 공동으로 기업부문 세계 1위에 오를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디자인 경영센터의 가장 큰 역할은 모든 제품에서 삼성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 이를 위해 신┎?기획단계에서부터 디자이너가 참여해 마케팅,R&D 담당자와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종합기술원에서 열리는 미래전략 기술회의에도 관련 디자이너가 반드시 참석한다. 이는 "디자인과 같은 창의력이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경영의 최후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밝힌 이건희 회장의 지침이기도 하다. 디자인경영센터는 설문조사와 일 대 일 인터뷰 등을 통해 삼성의 이미지와 가장 부합되는 색깔에서부터 탤런트,심지어 TV프로까지 샅샅이 조사한 뒤 브랜드 컨셉트를 잡는다. 정국현 디자인 전략팀장(상무)은 "삼성 로고가 붙어있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이 삼성제품임을 알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게 기본 목표"라고 말했다. 디자인센터는 신제품 기획을 위해 세계 각 지역별로 집중공략할 소비층을 선정,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한다. 단순한 설문조사가 아니라 1주일간을 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아이디어를 짜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컨셉트제품 중 지금까지 모두 1백78개가 특허로 등록돼 있다. 3년 후,5년후,10년 후 등 시장출시 시점은 물론 제품과 모델명,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까지 책정해 놓는다. ◇특별취재팀=이봉구 산업담당부국장(팀장),강현철,이익원,조주현,김성택,이심기,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