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신용등급이 A로 올라간 것을 두고 진념 부총리는 "구조조정 노력이 평가받은 것"이라며 소감의 일성을 터뜨렸다. 그는 "탄력있는 거시정책이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잘해서 그렇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과연 정부가 잘해서 그러한가. 무디스는 A등급 복귀 사유로 대외부채 상환능력이 개선되었음을 가장 먼저 꼽았다. 다각화된 산업구조는 두번째 사유.융통성 있는 환율정책은 세번째였다. 여기에 더해-토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고도성장보다는 건강한 경제를 추구하는" 정책에도 점수를 줬다. 항목별로는 정부가 잘한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포함돼 있다. '다각화된 산업구조(diversified industrial structure)'라는 말은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재정경제부는 웬일인지 이 항목을 '경제의 역동성'이라는 말로 얼버무려 발표했다. 경제의 역동성과 다각화된 산업구조는 서로 다른 말은 아닐지라도 결코 같은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무디스는 "다각화된 산업구조가 작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서 한국경제를 지탱시켰다"고 지적했다. 다각화된 산업구조란 예컨대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통신으로 이어지는 산업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9·11 테러 이후 한국 경제를 아시아 다른 나라와 극적으로 차별화시켰던 것은 바로 다각화된 산업이었다. 한국과 비슷하되 다른 길을 갔던 나라들,예를 들어 싱가포르 대만 홍콩은 산업포트폴리오에서 한국과는 매우 달랐다. 이들은 IT단작(單作)구조였기 때문에 미국 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과 달리 외자(外資)가 산업의 주류였다는 점도 이들에겐 아킬레스건이었다. 결국 아시아 경제는 외국인 투자가 몸을 사리면서 마이너스 5∼9%까지 곤두박질쳤다. 무디스는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각화는 과연 우리 정부가 추진해왔던 정책 방향인가. 불행히도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대기업들의 다각화 투자는 언제나 정부규제 대상이었고 걸핏하면 징벌이 주어졌고 기업들의 오류와 악습으로 치부됐다. IMF사태가 터졌을 당시 '원죄 지은 기업'이며 '해봐야 안되는 산업'으로 분류되었던 바로 그 종목들이 미국 신경제가 함몰한 공간을 메운 효자가 됐다. 이들의 이름은 전통산업이며,굴뚝산업이며,나라를 망하게 한 중후장대 산업이었다. 이들 전통산업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대신 벤처형 산업구조로 가야한다는 것이 김대중 정부 산업정책의 기본골격이었다. 물론 이들 산업에서도 채무조정 등 구조조정 노력이 있었기에 그나마 성과를 올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끝난 산업'이라며 손가락질 받던 것을 생각하면 마치 쫓겨난 자식이 부자가 되어 돌아온 격이다. 외자유치, 벤처육성, 대기업 규제가 국민의 정부 산업정책의 3대 기둥이었다면 신용 등급 A는 불행히도 이들과는 별 상관이 없다. 원인과 결과,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혼동할 까닭은 없다. 이런 이유로 당국자들이 구조조정의 성과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만하는 것을 곱게만 볼 수도 없다. 구조조정은 필요한 것일 뿐 충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본말을 전도시켜서도 안되겠다. 지금 일본의 미진한 구조조정을 두고 논란이 많지만 산업 기반의 침하라는 본질을 외면한다면 월가 금융자본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본말전도의 결론에 도달할 뿐이라는 경고도 있다. '산업 경쟁력'이라는 화두를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8일) 김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A등급 승격 축하연을 갖는다지만 굳이 시비를 걸어보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