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피터 드러커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인간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그 관계의 변화'였다. 그는 93세의 나이에도 3시간 동안을 쉬지 않고 강의했다. 드러커 교수는 자신을 '시대와 사회의 방관자 또는 관찰자'로 자처하고,스스로 미래학자가 아니라 사회생태학자로 여기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고령이라 말은 느렸지만,풍부한 사례와 위트로 강의실은 시종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21세기의 큰 변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인구구조의 변화'다. 그 가운데 하나는 노인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주요 세력으로 급속히 부상한다는 점이다. 이 두가지 추세는 모든 선진국과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지만,우리 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은 고사하고 주의도 제대로 기울이지 않고 있다. 드러커의 할머니 시대,대부분의 여성들은 '지식'이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당시 여성들은 지식이라고 할 만한 것에 접근할 시간이 사실상 없었다. 피임에 관한 지식이 없었으므로 많은 아이들을 출산하고 양육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유아 사망률 때문에 영일(寧日)이 없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음식 준비와 설거지 바느질 그리고 집안 청소 등으로 녹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시대에는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여성들의 일을 거들어 줄 각종 기기들,예컨대 재봉틀 세탁기 냉장고 등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지식에 접근할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었다. 동시에 여성들이 가정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다름 아닌 타이프라이터와 전화교환 업무였다. 그러나 근육을 사용하는 산업사회 시대가 끝날 무렵까지는 남성이 보다 유리했기 때문에 일터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종속적 지위'에 머물렀다. 따라서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과 같은 사회문제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제 사회는 산업사회를 마감하고 지식사회로 이동했다. 자동화와 정보화가 확산되면서 여성들은 지식에 접근할 시간을 충분히 갖게 되었다. 지식사회는 본질적으로 팔과 다리의 완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두 눈과 손가락 그리고 두뇌를 사용해 일을 한다. 그런 것들을 사용하는데는 여성이 남성보다 못할 리가 없다. 오히려 더 유리하다고 하는 것이 옳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몸보다 머리를 쓰는 시대에 남자는 적응 못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남성은 유전학적으로 '도태되는 종'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여성들이 얻고 있는 반면,남성들의 실업은 늘어만 간다고 분석했다. 지난 1960년대 초 유럽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이 일자리를 갖고 있었을 때 여성들의 취업 비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93년 남성의 실업률은 22%로 늘어났으나,같은 기간 여성의 취업률은 56%로 대폭 상승했다. 96년 유럽연합(EU)에서 정규교육을 제대로 마친 비율은 남학생 1백명당 여학생은 1백24명이나 됐다. 우리 나라의 여성인력,특히 고학력 여성인력의 취업비율은 아직도 매우 낮다. 그래서 간혹 각종 사회집단의 고용에 있어 여성을 일정비율로 우선적으로 할당하는 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하는 경우를 본다. 과거에는 구조적으로 여성의 취업을 막는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지식 접근에 있어 성차별은 사라졌다. 따라서 여성은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더 이상 종속적 지위가 아니며,고용정책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도 아니다. 인간도 사회도 그리고 그 관계도 변하고 있다. 지식근로자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 최근 우리 나라 기업들의 신입사원 및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성희롱 예방 및 대처 방법을 설명하는 것도,그리고 이혼율이 급증하는 것도 이같은 추세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드러커는 "어떤 사회의 지배적 문화는 그 시대에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집단이 결정한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jklee480808@hanmail.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