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범 <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 > '때밀이수건을 아침에 1백개 놓아 두면 영업시간이 끝난 후 35개가 분실된다. 레저업체 이름까지 찍힌 수건이 분실되고 목욕 후 얼굴에 바르는 로션이 수시로 없어지고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어도 분실되고…' 어느 동네 목욕탕 얘기가 아니다. 중산층 이상이 즐겨찾는 고급 리조트내 사우나의 현실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의 우리 레저문화의 현주소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일만 열심히 하는 '일 개미'에서'놀 줄도 아는 개미'로 바뀐 지 20년이 채 못된다. 일만 할 줄 아는 개미시절에는 일을 하지 않는 여가시간은 단지 일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한 쉬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등 소위 3저에 힘입어 우리 경제가 높은 성장세를 지속했고 국민소득 수준도 크게 향상됐다. 게다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우리 국민들은 비로소 레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레저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골프장 스키장 콘도미니엄 등 레저산업은 높은 성장세를 지속했다. 콘도회원권을 소지하는 것이 중산층을 나타내는 징표로 간주되면서 콘도산업이 호황을 구가했다. 고급 스포츠인 골프나 스키도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1990년 4천실에 불과했던 객실 수가 지난해에는 2만실로 늘어났고 스키장 수도 같은 기간에 6개소에서 13개소로,골프장 수는 45개소에서 1백58개소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골프장 스키장 콘도미니엄 등 대부분의 레저시설은 선진국 못지않은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리의 레저문화는 어떤가. 사우나탕의 수건이나 화장품은 물론이고 복도에 걸어놓은 액자나 객실의 수도꼭지까지 남의 눈을 피해 슬쩍 가방에 넣고 나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상류층이 즐겨찾는 골프장도 예외는 아니다. '매너 스포츠'인 골프를 하면서 큰소리를 치고 거액의 내기골프를 한다. 늑장 플레이를 할 경우 뒤팀의 불평을 들어야 하며 플레이를 끝낸 후 샤워장에서는 수건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꼴불견들이 적지 않다. 주차장에 세워놓은 승용차에서 분실사고가 나면 책임이 없는 레저업체에 배상하라고 큰소리치고 그것도 안 되면 레저업체 홈페이지에 게시해 업체를 비방한다. 소득수준 1만달러 시대에 5천달러 수준의 저급한 레저문화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미숙한 레저문화는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레저시설을 찾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겨주고 결국은 본인도 피해를 입게 된다. 월드컵대회를 전후해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텐데,이런 저급한 레저문화가 외국인들을 쫓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부터라도 소득수준에 걸맞은 올바른 레저문화를 정립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운동을 전개할 때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의 레저문화가 계속 저급한 수준에 머무를 것이고 7월부터 실시되는 주 5일 근무제 실시의 명분인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재충전 또한 요원할 것이다. 스키장은 또 어떤가. 스키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왕초보'가 몇번 스키를 타고 상급자 코스로 가서 사고를 낸다. 안전요원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코스를 권하면 대뜸 욕부터 나온다. 사고가 나면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음주운전과 다름없다. 또 곤돌라나 리프트에서는 금연으로 되어 있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흡연을 하고 꽁초와 쓰레기는 아래 슬로프로 던진다. 눈이 녹은 봄에는 고급인력인 직원들이 동원되어 쓰레기 대청소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