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었다. KAIST에서 미사일개발에 몰두하던 김길호 연구원은 또 하루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목이 몹시 말라왔다. 그는 세면장으로 달려가 수도꼭지에 입을 댄 채 한참이나 찬물을 들이켰다.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시원한 건 잠시뿐,갑자기 배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날 하루 배앓이를 하면서 이상한 유혹에 빠졌다. 귀신에 홀린 듯 자꾸만 맑은 물을 만드는데 평생을 바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달 뒤 그는 '미사일'보다 '물'을 선택하기로 다짐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KAIST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을 다니다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가 물에 미쳐 사표를 내자 친지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며 힐난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귀신'에 홀려 기어이 물장사로 나섰다. 그는 우선 정수기 회사의 외판원으로 취직해 창업자금을 모았다. 이 돈으로 서울 소공동 갱생빌딩에 허름한 사무실을 얻어 주식회사 CK워터텍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그는 끝내 세라믹필터와 활성필터가 내장된 미네랄 정수기를 개발해냈다. 정수기가 개발되자 대리점을 하겠다는 사람 3명이 그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가 정수기의 필터링 능력을 거듭 자랑하자 한 사람이 이렇게 질문을 했다. "김 사장,이 정수기 성능이 그렇게 좋다면 농약을 탄 물이라도 걸러 마실 수 있다는 거요" 이 얘기를 들은 김 사장은 두 말 없이 실험실에 있는 청산가리를 가져왔다. 독극물 표시 해골이 그려진 청산가리 병을 열어 물에 타서 정수기에 부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그만하면 믿을테니 이제 그만두시오"라며 만류했다. 그럼에도 김 사장은 물이 정수돼 나오자 서슴없이 꿀꺽꿀꺽 마셨다. 그들은 김 사장이 쓰러지지 않을까 겁먹은 얼굴로 바라보다 결국 모두 대리점 계약을 맺고서야 돌아갔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반둥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인도네시아 판매상 3백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청중들이 열띤 호응을 보이자 '이 정수기로 오줌도 걸러 마실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진짜냐고 되물었다. 그는 페트병 두 개를 구해 "지금 오줌 마려운 사람이 있으면 채워 오세요"라고 했다. 두 사람이 화장실 쪽으로 가더니 페트병에 자신의 오줌을 담아왔다. 청중들은 숨을 죽인 채 김 사장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그러다 누런 오줌이 맑은 물이 되어 흘러나오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렸다. 김 사장은 이 물을 오줌의 주인들과 함께 나눠마셨다. 덕분에 연간 4만대 이상을 인도네시아 시장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김 사장은 기업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독극물이나 오줌까지도 서슴없이 정수해 마실 만큼의 광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광기에 힘입어 CK워터텍은 이미 연간 50만대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는 세계적인 정수기업체로 발돋움했다. (02)558-9378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