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한때 '세계의 공장'소리를 들었던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었다. 산업혁명의 진원지였고, 마르크스가 딸이 굶어죽는 것을 보면서 '자본론'을 쓴 곳도 수도 런던이었다. 그런 영국은 19세기 중반까지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다 19세기말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과 독일에 밀리면서 '팍스 브리태니카'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세계 최초로 산업화를 이룩했던 영국이 쇠퇴한 원인으로 경제사가들은 흔히 문화적인 요소를 꼽는다. 반기업적 반공업적 특징을 지녔던 당시의 영국 젠트리(신사계층)문화가 사회 전반의 기업가 정신을 약화시켰고,이것이 영국의 쇠락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경영학계의 석학 피터 드러커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다. 그는 소셜 마인드 세트(Social Mind Set·사회의식구조 또는 사회분위기)란 용어로 설명한다. 영국의 당시 소셜 마인드 세트가 과학기술자를 우습게 보는 경향을 보였고,이것이 영국 국력의 약화를 가져온 결정적 요인이라고 강조한다. 역사를 통해 보면 대개 한 나라의 멸망과 쇠퇴에는 지배계층의 도덕적 해이와 문란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로마제국의 멸망도 지배계층의 도덕적 우월성인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무너지면서 극성을 부린 사치와 타락이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일 게다. 사회분위기와 사회의식구조가 어떠냐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우려를 넘어 국가존망의 위기감마저 느끼게 한다. '자식을 낳으면 절대 이공대에 보내지 않겠다는 나라' '대학생 직업선호도 1위가 공무원인 나라' '공대에서 고시열풍이 부는 나라' '그랜저 타는 나이가 한의대 출신은 30세,의대 35세,공대 45세,자연대는 영원히 못타는 나라' 이런 나라를 과연 '희망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나라'다. 모처럼 주가가 연일 상승곡선을 긋고 있고,진저리나는 정치판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요즘이다. 오랜만에 정치와 경제가 훈풍에 돛을 달고 순항하는 따스한 봄이다. 이 봄날에 '절망의 나라'를 노래하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과학기술을 경시할 때 그 결과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전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얼마전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다녀왔다는 분에게서 우리나라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데는 IT산업이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색다른 분석을 들은 적이 있다. 세계첨단을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IT산업이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레벨업시켜 외국투자자들을 한국증시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나라 IT산업에 대한 찬사는 지난 3월 중순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정보통신전시회인 세빗에서도 쏟아졌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는 "독일은 한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IT산업이 성장한 나라"라고 말했고,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한국의 인터넷산업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 이처럼 잘 나가고 있는 우리나라 IT산업이 앞으로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선 회의가 든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대졸초임의 연봉은 신용평가사 3천5백만원,금융업종 2천4백만~3천만원,전자및 IT업종 1천8백만~2천3백만원이다. 이공계 학생들이 이처럼 괄시를 받는 사회에서 IT산업이 세계일류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판단이 안 선다. 올해는 대통령을 뽑는 '대선의 해'이다. 대선후보들은 국가적 과제로 등장한 이 문제에 대해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대통령될 자격이 있다는 걸 직시했으면 좋겠다. cw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