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주 조흥은행장 내정자. 지난 보름동안 금융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1급 부장을 거치지 않고 임원이 된 것도 놀랄만한데 임원이 된지 불과 1년만에 은행장이 됐으니 그럴만도 하다. 올해 나이 만 49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법인기업(1897년 설립)으로서 조흥은행의 '연륜'과도 맞물려 '젊은 CEO(최고경영자)'로서의 파격이 더욱 두드러졌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행장으로 내정된지 보름여 사이에 그는 '자리의 무게'를 터득한 듯했다. "아직도 은행장이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다"며 못내 어색해했지만 "젊고 역동적이며 국제적인 수준의 은행을 만들겠다"며 확실한 청사진을 내놓았다. 아울러 '시장중심.인재중심의 경영'이라는 화두를 투자자와 임직원들에게 던졌다. 29일 '내정자'라는 꼬리를 떼고 40대 은행장으로서 본격적인 장정에 오르는 그에게서 상당한 자신감이 배어 났다. 그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역시 '40대 은행장'이다. 조흥은행에서 내리 잔뼈를 굵혀 CEO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그의 행장 등극은 더욱 극적이다. 그와 친구 사이인 하영구 한미은행장이 한발 앞서 '40대 행장'의 기록을 세웠지만,외국계 은행에서 영입된 케이스라는 점이 다르다. 홍 행장 내정자에게는 조흥은행에서 20년 넘게 고락을 같이해온 입행 선배만 2백명이 넘는다. 이에 대해 그는 상당한 중압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인간 홍석주를 은행장으로 뽑은 것이 아니라고 본다. 금융구조조정이 아직 진행중인 만큼 한국 금융산업을 다시 한번 도약시키는 계기로 삼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는게 그가 스스로 부여하는 행장 발탁의 의미다. 그런 만큼 그는 당장 임원인사에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결론은 확실했다. "전문성과 경륜을 적절히 조화시켜 안정적인 조직을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투자부문에서는 외부나 내부 전문가를 적극 발탁하되 영업부문에서는 경륜과 경험을 겸비한 선배들을 중용하겠다는 설명이다. 한발 더 나아가 "생물학적인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일에 대한 열정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인사를 실시하겠다"고 강조한다. "중기적으론 능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제도를 체계화하고 인재양성을 위해 연수원을 은행장 직속기구로 운영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영업점 경력이 없다. 지점장 한번 안해봤다. 주로 기획부문에서 은행의 청사진을 그리는데 은행 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이런 까닭일까. 그가 내보이는 은행 청사진은 너무나도 확실했다. "조흥은행의 강점인 소매금융 우위전략을 지속하되 올 4.4분기중 외국자본이 참여하는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용카드사를 3.4분기중 분사해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자산운용부문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적극적이다. "상업은행이 생존하기 위해선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어우러져야 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범위의 경제는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이룰 수 있지만 규모의 경제를 위해선 합병이 불가피하다"는 것. 따라서 "기회만 주어진다면 대등합병이나 흡수합병 등 모든 합병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은행과 외환은행도 합병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지금은 조흥은행이 독자생존할 기반이 마련됐고 GDR(해외주식예탁증서) 발행을 통한 민영화가 시급한 만큼 합병을 위한 합병을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역시 젊었다. 그리고 시장지향형이었다. 그가 투자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시장중심의 경영'이다. 그는 "현재 조흥은행의 주가는 내재가치에 비해 디스카운트(할인)돼 있다"고 단언한다. 최근엔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조흥은행의 실상이 잘못 알려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시장 및 주주중심의 경영과 윤리및 투명경영이 뭔지를 확실히 보여 주겠다"고 한다. "현재 시가총액 10위인 조흥은행 주가를 재임기간중 반드시 시가총액 5위 안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그는 첫번째 시험대로 오는 6월 예정된 GDR의 성공적인 발행을 꼽았다. 이를 위해 "해외투자자들이 우려하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충당금 적립률(현재 40%)도 획기적으로 높일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외국인 사외이사를 영입하고 회계처리를 미국 기준에 맞추는 등 주주중시 정책을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계의 또 다른 관심은 위성복 상임회장 내정자와 홍 행장 내정자의 관계다. 이에 대해 그의 태도는 사뭇 단호했다. "수렴청정 운운은 말도 안된다"는 것. "위 회장 내정자가 은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그의 경험을 전수받되 회장과 행장의 관계는 적절한 조화를 꾀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29일 이사회에서 '이사회 회장과 은행장의 역할에 관한 운영기준'을 제정해서 운영할 방침이라고 못박았다. 조흥은행의 대주주인 정부는 당초 은행장 후보의 덕목으로 '젊고 국제적인 감각이 있으며 개혁적인 사람일 것'을 꼽았다. 이 조건에 맞는 사람으로 홍 행장 내정자가 뽑혔다. 그가 과연 이런 기대에 부응해 재도약의 발판을 다지고 있는 한국 금융산업의 역사를 다시 쓸지 금융계의 관심이 크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 ----------------------------------------------------------------- [ 약력 ] 1953년 광주 출생 광주서중.경복고.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졸업(MBA) 한국과학기술원(KAIST) 최고 경영자과정 수료 1976년 조흥은행 입행 국제부.런던지점 대리 종합기획부 과장.부부장 리스크관리실장.기획부장 상무(재무기획본부장) 2002년 3월29일 은행장 취임 예정 김인자 여사와 1남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