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일본의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는 더이상 놀랄만한 내용이 아니다. 그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이웃국가들이 일본의 금융위기로부터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실패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한 대표적 국가는 대만이다. 현재 대만 은행권은 일본과 유사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외견상으로 볼때 대만 은행산업의 병세는 일본보다 더 심하다. 2000년말 대만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은 7.8%였다. 이는 일본은행의 7%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양국의 실질적인 부실비율은 공식통계보다 훨씬 높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이 일본의 경우 30%정도,대만은 15~20%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은행권의 문제는 부실규모가 크다는 것보다 부실비율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1995년말 대만은행의 부실비율이 3%정도였다. 하지만 95~98년에 대만경제가 강하게 성장했음에도 불구,부실비율은 빠른속도로 높아졌다. 이는 경제성장만으로는 대만 은행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상가상으로 수출중심의 대만경제가 향후 수년간 1990년중반의 5~6%성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점도 은행부실 해소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현재 대만은 오랫동안 일본경제를 괴롭혀온 디플레에 직면해있다. 막대한 부실여신으로 발목이 잡힌 일본은행들은 1996년 1월이후 월간 대출규모를 줄여왔다. 대출자체를 꺼리고 있을뿐더러 대출여력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신용능력 저하는 일본의 국내수요를 감소시켜 디플레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또 수요부진과 물가약세는 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반면 실질적인 부채규모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만은행들의 전년동기대비 민간기업에 대한 월간대출규모는 2001년초이래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급증하고 있는 부실여신 비율을 감안할때 대출액이 조만간 증가세로 반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시장개방 조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경우 대만물가는 더욱 하향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은행권 부실 물가하락이 일본경제와 대만경제에 "공통악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대만정부는 2001년을 "금융개혁의 해"로 선포했었다. 금융기관간 인수합병(M&A),금융지주회사 설립,은행.보험.증권사 통합시 세금감면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도 마련됐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방향은 바람직했지만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특히 은행난립이 대만금융의 최대 문제점이라는 지적에도 불구,은행합병은 매우 지지부진했다. 2000년말 기준으로 53개 국내은행중 상위 5대은행이 33.1%의 점유율을 차지한 반면 1%미만의 은행은 30개에 달했다. 이중 2001년이후 완료된 합병은 단 한건뿐이다. 은행합병의 최대걸림돌은 대부분 메이저급 은행들이 인수를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를 원치않을 뿐더러 중소형 은행들은 가격불문하고 대형은행에 매도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물론 은행합병이 대만금융시스템 회복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지분을 낮추고 합병을 가속화해 은행경쟁력을 높이면 금융불안은 상당히 완화될 것이다. 대만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신속한 "은행클린화"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정리=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 .............................................................. 이 글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Taiwan's Banking Woes"라는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