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발표되는 국민경선 결과와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선거의 해라는 것이 실감난다. 노무현 후보가 보인 '노풍'의 위력이 놀랍고,이인제 후보가 제기한 음모설과 경선포기 여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그동안 각종 정부실패와 '게이트'건으로 정치하면 심드렁하게 생각했지만,이제 정치가 뜨기 시작한 것 같다. 선거의 해에 사람들이 보이는 정치적 관심은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에 얼마나 유의미할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처럼,우리도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하지만 물에 사는 물고기도 1급수니 2급수니 하며 물의 질을 따지게 마련이라면,우리가 민주주의의 질을 따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점에서 보면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과정이나 여론조사도 중요하지만,그것이 다는 아니다. 아무리 민주경선을 거쳐 후보가 되고,또 그 후보가 선거를 거쳐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과연 청렴한 민주적 대통령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은 불확실하다. 오히려 민주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통령이 군주처럼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없는지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민주주의 사회란 국민들이 통치하는 사회며,또 국민들이 대표자를 뽑아 간접 통치한다고 하지만,다스리는 것은 대표자의 몫일뿐 일반 국민의 몫은 아니다. 대의정치란 무엇인가. 대의정치의 핵심은 국민들이 공약을 내걸고 출마한 후보자들을 평가해 그들에게 공직을 맡기고 또 정기적으로 신임과 불신임을 표명한다는 점에 있다. 국민들이 대표자들의 실적을 보고 평가해 신임과 불신임을 결정한다면,대표자들의 위치와 위상이 분명해진다. 국민위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의 봉사자로서의 위상이다. 결국 민주사회의 정치인들은 한 회사의 종업원과 비슷한 처지가 되는 셈이다. 종업원이 그 자리를 지키려면 경영주의 신임을 잃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듯이 정치인들도 국민의 신임을 유지하도록 견마지로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관계야말로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다. 한국 민주정치의 아킬레스건은 주인에 종속된 대리인에 입각한 '대리인 모델'이 정착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서 대리인으로 뽑힌 대통령은 어느새 '군주'처럼 군림한다. 이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에서 어떻게 국민의 뜻에 따라 심부름을 하는 '나라의 일꾼'이라는 의미를 판독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된 사람을 보고는 대권을 거머잡게 됐다느니,산 정상에 올랐다느니,오랜 한을 풀게 됐다느니,혹은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를 차지한 감회가 어떠냐는 식으로 접근한다. 또 그같은 표현은 한갓 수사(修辭)로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자신의 고유권한이라며 많은 공직자리를 임의로 배정하고 특히 검찰권 조세권을 '군림하는 권력'의 주요 축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제왕적 지배의 행태에서 홉스가 말한 무시무시한 괴물인 '리바이어던 모델'을 상기할 수 있을지언정,권력과 권위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리인 모델'을 어떻게 음미할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에게 '대리인 모델'이 부분적으로나마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임기가 단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리인 모델에 부합하는 기간제 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기간제 임용은 그 기간 심부름꾼 노릇을 하기보다,주인과 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기간제 제왕적 대통령제가 "4년에 한번 표를 찍어 주인 노릇 하고 나머지는 종살이를 한다"는 루소의 영국의 대의제에 대한 비아냥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러므로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려면 '기간제 대리인' 모델을 '일용직 대리인'모델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일용직 대리인 모델은 하루하루 경영주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해고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종업원을 대상으로 한 모델이다. 결국 우리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제왕이 아닌 대리인을 뽑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단순히 후보 경선과정이 민주적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이 제왕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삼권분립을 강화하고,제도와 법을 정비하는 일이 후보 경선의 민주화보다 더욱 더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