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신화의 주역이었던 메디슨이 얼마 전 부도처리됐다. 메디슨의 부도는 무모한 기업확장,CEO의 자질문제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첫째 은행권의 대출행태가 과거와 같은 담보 위주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 둘째 우리 경제의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국내 은행의 총여신에서 담보대출 비중은 1997년 말 41.3%에서 99년 이후 50%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리스크관리 능력의 미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다수의 채권은행들이 부도직전까지도 메디슨에 제공한 대출을 '정상여신'으로 분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리스크관리 시스템의 취약성이 한보 대우 등 대기업 부도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의 총체적 부실을 야기해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의 단초가 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채권은행이 담보물의 가치만 믿고 기업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할 경우 기업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높아지고 차입기업의 부도위험은 상승한다. 이와 더불어 금융회사가 직면하는 '신용리스크(Credit Risk)'수준 또한 상승한다. 경제 전반의 신용리스크가 높아지면 금융회사는 건전성을 조속히 확보할 것을 요구받게 되고,이는 금융회사로 하여금 대출기업의 장래수익성,채무변제 능력,경영 능력과 같은 질적·동태적 측면보다 담보자산,매출규모와 같은 양적·정태적 측면에 의존하게 한다. 이로 인해 금융회사는 다시 담보대출에 의존하고 경제의 리스크 관리수준은 계속적으로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그에 따라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며,대외 신인도와 국가경쟁력이 저하되는 등의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벤처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담보제공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취약하고,경제내에서 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중소기업들은 투자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며,결국 우리 경제는 대기업 위주의 불균형 성장구조에서 탈피하기 어려워진다. 더구나 자산시장의 변동성으로 인해 담보가치가 하락하게 되면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이 증대하고,그 결과 일본의 경우처럼 '부채-디플레이션(debt-deflation)'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메디슨 부도과정에서 드러난 국내 은행들의 대출관행은 IMF이후 선진금융기법,특히 리스크관리 시스템의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 말이 허위가 아니었나 의심하게 한다. 은행으로 하여금 대출기업의 신용위험 관리노력을 높이고,부실징후 기업에 경영개선 권고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기업 구조조정촉진법'과 정책당국의 구조조정 노력도 담보물의 처분가치에만 집착하는 은행들 앞에서는 한낱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또 우리는 이번 메디슨 부도과정에서 드러난 신용평가회사들의 미비한 '신용평가 능력'을 지적해야 한다. 신용평가회사들은 기업의 신용도 변화를 신속히 파악하여 투자자들의 신용리스크관리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신용평가회사들은 지난해 5,6월 투기등급(BB+)으로 조정된 메디슨의 회사채등급을 부도내기 이틀 전까지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위험상황에 대한 '조기경보기능'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지금부터라도 과학적인 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하고 또 전문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신용평가회사의 신용평가 능력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IMF 위기 당시 여러 금융회사들이 문을 닫고 수 많은 금융인들이 거리로 내쫓기는 상황에서,국민들이 희망했던 것은 위기발생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선진 금융시스템의 도입이 아니었던가. 그 이후 '공적자금'이라는 국민의 혈세를 거름으로 하여 다시 안정궤도에 진입한 국내 금융회사들이 선진 리스크관리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97년 당시의 다짐을 잊어버리고 눈앞의 영업이익에만 집착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IMF 위기는 역사의 비극이지만,유사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역사의 소극(笑劇)이 아니겠는가. hahyunjo@hanmail.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