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전상서(前上書) 회장님. 올해 주총에서 그룹계열 건설회사의 결산실적이 크게 호전된 것으로 보고받으셨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이 치솟자 그동안 분양가를 올려온 건설사들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을 아시는지요. 한푼 두푼 모아 내집을 마련하거나 집을 늘리려던 서민들의 꿈을 멀어지게 만든 주범이라는 것입니다. 대형 주택업체들이 새 아파트값만 지나치게 올리지 않았더라도 집값이 이렇게 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원성도 만만치 않습니다. 주택업체들의 입장에선 억울한 면도 있을 듯 합니다. 어디 아파트값 급등을 초래한 책임이 주택업체에만 있겠습니까. 주택공급부족과 저금리 현상 등의 시장여건은 제쳐두더라도 무능한 정부, 분양현장마다 쫓아다니며 프리미엄을 올려놓는 떴다방(이동 부동산중개업소),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기웃거리는 투기꾼,반상회에서 아파트값을 올리기로 담합한 주부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하지만 최근 몇년간 건설회사들이 보여온 영업형태를 보면 책임을 미룰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어서 버린 것 같습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최근 분양한 국민주택규모의 한 아파트는 평당 분양가가 1천2백만원을 넘었습니다. 주변의 인기 아파트값과 버금가는 값입니다. 인근에서 중견업체가 공급하는 고급 아파트보다 평당 1백만∼2백만원 비싼게 예사입니다. 아무리 비싼 마감재를 사용하더라도 평당 분양가가 50만원 이상 차이날 수 없다는 것은 건설업계 종사자가 다 아는데도 말입니다.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된 마당에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분양가를 결정하겠다는데 굳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비싼 값에 내놓아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게 현실이니까요. 건설회사 CEO로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도 당연하고요.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분양가를 지나치게 올린 부작용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오고 있는데 어찌 하시겠습니까. 당장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는 방안까지 검토중이랍니다. 주택업계의 수익구조가 그만큼 악화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건설회사 사장들은 부동산 버블이 되돌려줄 부메랑이 더욱 치명적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장님은 지난 80년대 후반 집값이 폭등하자마자 임금상승 압력이 거세었던 기억이 생생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 임금은 영국의 근로자보다 높게 뛰었고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날로 떨어졌던 일도 생각나실 것입니다. IMF 경제위기를 맞은 원인을 이곳에서도 하나쯤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떻습니까.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10년 가량 복합불황의 늪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자칫 하다간 건설특수 하나 누리려다 그룹의 다른 계열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회장님. 그런데도 은행들은 불속을 뛰어드는 나방처럼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가계대출을 늘리고 있습니다. 정부도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조자룡 헌칼 쓰듯' 행정규제에 의존해 시장과 싸우려고만 합니다. 너도 나도 제 살길을 찾기에 바쁜 지금이야말로 기업이 건전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할 때라고 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어찌 주인없는 은행이나 레임덕에 빠진 정권보다 무책임할 수가 있겠습니까. soosu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