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문 들은 거 없어?" "글쎄, 너무 조용해" "김모 부행장 등이 힘들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 요즘 표정이 어때?"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데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더구만" "하기야 임원인사가 주총사항도 아닌데 행장 외에 누가 알 수 있겠어" 지난 8일 점심시간에 오간 국민은행 팀장급 직원간 대화의 일부다. 오는 15일께로 예정된 대규모 임원인사가 화제였다. 여느때 같으면 주주총회를 앞두고 임원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고, '○○○가 열심히 뛴다더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이 기승을 떨칠 시기.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이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 비단 국민은행만이 아니다. 6명의 임원 임기가 만료되는 외환은행 등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시계를 10여년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1993년 서울은행 주주총회장. 의장(은행장)의 입에서 신임이사 명단이 발표되자 주총장은 크게 술렁였다. 이미 비공식적으로 발표됐던 이사 후보가 제외되고 대신 엉뚱한 사람이 이사 명단에 오른 것. 주총 시작 불과 30분 전에 '높은 곳'의 뜻에 의해 명단이 뒤바뀐 것이다. 은행 주총시즌이 시작됐다. 과거 은행 주총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이사 선임이었다. 상법상 3년의 임기가 보장되는 이사를 뽑는 자리인 만큼 직원은 물론 거래기업이나 투자자 등 제3자의 이목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아니다. 주총에서 선임되는 이사(등기이사)는 사외이사가 고작이다. 나머지 임원 대부분은 은행장이 임명하는 집행임원이다. 그러니 주총에 대한 관심도 상대적으로 반감됐다. 이사 선임을 둘러싼 뒷얘기도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임원이 되기 위한 '운동'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집행임원도 임원임엔 분명하다. 퇴임하면 자회사 사장 자리가 보장된다. 그러다보니 인사권자인 은행장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외부의 힘을 찾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지난달 단행된 서울은행 집행임원 인사에서 1명이 은행장의 뜻과 달리 선임됐다는 설도 나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도 지난 2일 행내방송을 통해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은 공개해 반드시 불이익을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함으로써 인사청탁이 여전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이사회 제도의 개선으로 인해 은행주총을 감상하는 '재미'가 예전보다 떨어진건 분명하다. 게다가 아예 기념품을 주지 않겠다고 주총소집 통지서에 명기하는 은행이 대부분이다보니 총회꾼이나 소액주주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이처럼 달라진 주총 풍속도는 임원 선임권을 틀어쥔 은행장이 져야 할 책임이 더욱 커졌다는 걸 역설적으로 의미한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