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말의 결산주주총회가 한창이다. 작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우리나라 불투명지수(opacity index)가 조사 대상 35개국 중 31위로 발표됐다. 특히 회계와 기업지배구조 지수는 최하위로 평가되는 수모를 겪었다. 조만간 발표될 2001년의 지수 발표에서도 법률제도와 회계 및 기업지배구조의 평가가 계속 최하위권이라는 소식이다. 우리나라 회계투명성은 2000년 9월 23조원에 가까운 대우그룹의 분식회계와 부실감사 사건이 발표되고,60명 이상의 공인회계사에 대한 중징계,대우그룹 주력사의 대표이사 수감과 기소,빅5 회원인 대형 회계법인 해산 등의 충격을 기점으로 역사적인 전환이 시작됐다고 내심 평가하고 있던 터라 평가 결과의 신뢰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회계의 투명성은 △높은 품질의 기업회계기준과 이를 준수하는 기업 △독립성 있는 외부감사인 △직업윤리의 확보에 전력하는 한국공인회계사회 △감독의 전문성과 엄격성을 확립한 금융감독원 △부실회계에 대한 시장의 제재 등이 어울려야 성취할 수 있는 목표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미국의 엔론 사건 역시 특별목적기업(SPE)을 교묘하게 이용한 회계공학으로,가공의 이익을 계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지 못한 회계기준제정기구(FASB),증권감독기구(SEC),외부감사인(A&A)의 과실이 어울린 결과에 다름 아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회계제도와 관행은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가 계속됐다. 정부는 1998년 12월의 기업회계기준 전면 개정,1999년부터 시행된 결합재무제표 작성의무 부여,민간회계기준제정기구인 한국회계연구원/회계기준위원회의 출범(1999년 9월),상장법인에 대한 사외이사 도입을 의무화(1999년)했다. 또 다음해에는 감사위원회 제도의 도입(2000년),감사인의 피감사회사 주식 취득 일절 금지(2001년),상장기업의 분기재무제표 공시 의무화(2000년),외부감사 대상 기업들의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설치 운용 의무화(2002년)에 이어 부실회계와 부실공시에 대한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는 부실회계 과거 누적분의 대청소까지 사실상 용인함으로써 법적,제도적 분야의 개혁은 사실상 완성됐다. 그래서 지금은 법과 제도의 실천이 회계투명성 확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우리 사회엔 전반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신속히 진행되고 있지만,아직까지 회계개혁의 속도나 방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일부 전문가와 기업인들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회계의 국제화,투명성 확보 및 기업지배구조의 정상화는 외국인 지분율이 이미 3분의 1을 넘어선 한국의 자본시장이 최소 30%선으로 추측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신용등급을 A급으로 올리기 위한,그리고 한국의 간판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초일류기업으로 인정 받고 번영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즉 회계의 투명성과 국제화는,좋아서나 옳기 때문이라기 보다 우리나라와 우리 기업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시장과 직접 관계 없는 비상장기업까지 고난도의 국제화된 기업회계기준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중소기업이나 비상장기업 등에 대해서는 단순화된 회계기준의 적용을 허용하는 '회계기준의 2중 구조(two tier system)'가 요청된다. 도입된 법과 제도가 엄격히 준수되지 않으면 회계시장의 실패는 필연적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투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회계와 감사전문가들의 윤리적 행동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일반적으로 시장은 사익(私益)추구라는 인센티브가 성공의 추진력이 된다. 그러나 신분적 특권에 따른 초과이윤을 보장받고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회계정보시장,회계감사서비스 시장이 실패하지 않으려면,룰을 어긴 자에 대한 강력한 벌칙에 예외가 없어야 한다. 전문가시장은 벌칙의 강도와 적용의 엄격성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우리나라의 금융감독 당국이 되돌아보아야 할 대목이다. ilsupkim@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