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곳에 와 있는가. 나를 낳은 엄마는 누구일까. 나는 버려진 건가,아니면 길을 잃은 것인가. 내 모습은 분명 한국 사람인데 언어와 행동이 다르니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몇년전 스웨덴을 울음바다로 몰아 넣었던 한국인 입양아 아스트리드 트로치그씨(32·한국명 박수예)가 자서전 '피는 물보다 진하다'에서 제기한 의문들이다.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되는 이 책은 입양아로서 겪은 갈등과 애환이 그대로 배어 있어 읽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이같은 슬픔은 비단 트로치그씨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6·25전쟁 이후 50년 넘게 해외에 입양된 15만 입양아들의 공통된 비극일 터인데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고아수출국 1위라는 불명예를 씻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로 입양된 국내 어린이는 2천4백여명으로 5년전보다 오히려 5백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95년 이후는 중국과 러시아의 해외입양이 숫자에서는 앞서지만 인구를 따지면 한국이 여전히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전쟁고아와 혼혈아에 대한 대책으로 시행됐던 입양사업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 후에는 경제사정이 여의치 못해 해외입양이 장려되기까지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 선진국의 문턱에 선 나라에서 미혼모와 가정불화로 버려지는 아이들까지 해외로 보내지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내 입양을 촉진하기 위한 '입양특례법'을 만들어 주택융자는 물론 교육비 의료비 생활비 등을 보조해 주고 있으나,그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더욱이 장애아동은 외면당하기 일쑤여서 입양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미국 유럽 등지의 입양인 중에는 정치인이나 전문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한국을 이해하고자 여러 모임을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랑이 피보다 진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꼭 자기 혈육이어야만 한다는 우리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 슬픔은 계속될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