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들의 이합집산 등 정치권 기사가 부쩍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선거철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요즘엔 경제면에도 "벌써 선거철이 왔나…"하며 쓴웃음을 짓게 하는 기사들이 잦아졌다. 개인 신용불량 기준을 완화하고 기존 신용불량자들에 대한 사면을 확대한다는 등의 '서민대책'이 나쁠 건 없지만,유독 선거철에 대량 생산되는 까닭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신용사회 정착을 앞당기자며 카드복권제도를 도입하는 등 카드사용 확대에 앞장섰던 정부가 "무질서한 카드회원 모집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있다"며 돌연 '안면'을 바꾼 것도 '선거의 계절'을 실감케 하기에 충분하다. 행간(行間)을 통해 선거시즌의 도래를 읽게 해주는 경제 기사가 이쯤으로 그친다면 그저 통과의례려니 보아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며칠 전 사채 등의 이자율을 최고 연 90% 이내로 제한하는 대부업법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통과하더니,이번에는 주택 월세 이자율이 연 15%를 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시행령이 추진되고 있단다. 이자란 무엇인가. 자금시장의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돈의 '가격'이다. 금리는 땅값,임금과 더불어 시장경제를 떠받치는 3대 기본 가격이다. 경제의 혈맥으로 비유되는 돈의 가격이 왜곡되면 시장경제 전체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4,5년 전까지의 우리 경제가 그걸 웅변해준다. 정부가 전면적인 금리 자유화를 단행한 1998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에는 '규제금리'와 '실세금리'라는 이중 금리가 공존했던 기억이 새롭다. 정부가 기업과 가계의 과도한 이자 부담을 일정 수준 이하로 덜어준다는 취지에서 상한선을 그은 게 이른바 '규제금리'였지만,실제 자금 거래 과정에서 적용되는 금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됐다. 시장금리를 규제금리로 무리하게 억누른 결과는 '규제'와 '실세'간의 금리차 보전을 위한 구속성 예금인 '꺾기'와 '커미션'의 성행으로 이어졌고,자금수요자들에겐 그만큼의 번거로운 절차만을 추가시켰을 따름이다. 정부의 일방적 금리 규제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는 억지였다. 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돼 있다던 미국 유럽 등지의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들의 1990년대 중반 꺾기 비율이 국내 은행들보다 4배 이상 웃돌았다는 한국은행 통계가 그걸 입증한다. 제 아무리 잘난 외국계 은행이라도 '진흙탕 환경'에서는 흙탕물을 뒤집어쓰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이런 시장경제 왜곡이 1997년 말 외환위기로 귀결됐음은 다 아는 얘기다. 그로 인해 우리 경제 전반에 지워졌던 아픈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이자상한제도를 부활시키고,월세를 규제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장가격을 건드리는 정책은 탄력적인 시장상황 반영을 가로막고,상황에 따라서는 거래 자체를 실종시킬 수도 있다. 그 결과 다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은 결국 전주(錢主)의 '위험부담료'까지 가산한 초(超)고금리를 주고 더욱 은밀해진 방법으로 급전을 조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위적인 월세 규제 또한 실세이자와의 차이를 보전하기 위한 임대보증금 인상 등 변칙을 유발시켜 월세 이용자들만 더 어렵게 만들 것이 뻔하다. 지난 주 현 정부의 출범 4주년을 맞아 한국경제신문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주요 민간경제연구소장들은 "(김대중 정부는)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편의적 관료적 시장경제체제가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기치로 내걸었던 이 정부가 5년의 임기를 마감할 1년 뒤에 또 어떤 비판이 추가될지 안쓰럽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