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昇 < 중앙대 명예교수 / 前 건설부 장관 > 우리는 얼마 전 설을 쇠었다.설 때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중과세를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되풀이하게 된다.이제 음력 설을 없애야 할 때다. 이것은 미룰 수 없는 당면 개혁과제다. 우리의 이중과세는 많은 사회적 모순과 낭비를 불러오고 있다. 설날이란 새해의 첫날을 의미하며,이날을 명절로 하는 것은 새해를 경축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일력(日曆)은 양력을 쓰면서 설날은 음력으로 셈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그래서 설날의 개념은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음력 설을 지낸다. 이 분들에게는 신정(新正)이 왜 공휴일로 돼 있는지 납득이 안 될 것이다.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계속 양력 설을 지내고 있으며,필자도 그 중의 하나다. 이 사람들은 음력 설이 왜 필요한지,그리고 왜 며칠 동안을 공휴일로 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구정 때면 시간 보내기 따분하고,그래서 아예 집을 비우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신·구정을 같이 지내는 사람도 있다. 주로 명사들의 경우인데 이들에게 신정은 세배만 받는 설이고,구정은 가족과 함께 하는 설이다. 설날에는 많은 개인이나 기업들이 선물을 주고받는데,여기에도 이중과세의 폐해가 그대로 나타난다. 성탄절과 신정에 보내는 사람,구정에 보내는 사람,그리고 신·구정에 같이 보내는 사람,이렇게 뒤범벅이 돼 있다. 이중과세제도로 인해 신정과 구정은 다 같이 공휴일로 정해 휴무한다. 신정은 성탄절과 함께 '연말연시'라고 해서 온 나라가 들뜬다. 그런데 구정에 또 3일의 공휴가 주어져,통상 주말까지 묶어 5일 이상의 휴무가 관행화되고 있으니 이로 인한 사회적 생산력의 손실은 얼마인가. 이와 같은 모순과 사회적 낭비에도 불구하고 구정 설 제도를 고수한다는 건 세계화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지금 화교권(華僑圈)을 제외하고는 이 지구상에서 음력 설을 지내는 나라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날의 문화에 관한 한 우리는 세계에서 소외돼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설날이라고 휴무할 때 우리는 일하고,다른 나라들이 일할 때 우리는 설날이라고 쉬어야 하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박정희 정부는 음력 설을 없애고 양력 설을 지내도록 하는 개혁을 10여년 간 강행한 바 있다. 농경문화가 지배했던 그 당시 이러한 정책은 매우 외롭고 어려운 것이었다. 거의 모든 국민들은 음력 설을 지냈으니 결국 양력 설은 공직자들만 지키는 명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부가 이렇게 외로운 압축개혁정책을 강행했던 것은 근대화를 위한 확고한 개혁의지와 강력한 권위주의적 리더십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89년에 와서 우리의 설날을 음력 설로 환원해 버렸다. 그 때의 논리는 '명분이야 신정 설이 옳지만 국민 대다수가 구정 설을 지내고 있으니 국민들의 뜻과 편익을 먼저 생각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일반 서민들이나 근로자들은 대부분 음력 설을 지냈고,그래서 정부 시책과 국민생활 사이에 큰 괴리가 있었다. 장기간 지속된 권위주의 정부가 무너지고,최초로 국민직선에 의한 정부가 들어서서 이른바 민의를 우선한다고 취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동안 10여년 간의 진통을 겪으면서 겨우 양력 설이 정착하기 시작할 즈음에 와서 이를 원점으로 환원시킨 것은 사회개혁의 큰 후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그 당시 국무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필자에게도 응분의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현실적 문제에 대한 사회환경도 크게 달라지게 됐다. 우리나라 농촌인구의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1989년 당시의 16%에서 이제 8%로 반감했고,생일잔치나 설날을 위해 부모님들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역류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 음력 설을 없애는 개혁을 단행해도 큰 무리가 없는 개혁환경이 성숙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내년부터 음력 설을 없애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함께 나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렇게 이중과세를 없애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시급한 생활개혁의 과제라 할 것이다. ps0216@net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