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금연이니 채식이니 하는 건강 열풍이 불고 있다. 나는 그걸 단지 '건강'이 아니라 '몸'에 관한 관심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몸은 우리의 정신이 거주하는 장소다. 그러니 몸에 대한 관심이라면 새삼 새로울 것도 없다. 흔한 말로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니까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건강한 몸'이라는 것은 단순히 외향적인 육체, 혹은 구체적인 육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금연이야 일단 그렇다고 치고, 채식 바람에 한 몫을 한 것은 얼마 전에 방영된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인 걸로 알고 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그리고 또 채식에 거부감을 갖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채식이 좋은데 육식을 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거나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느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다소 중립적인 사림이다. 일단은 무성이든 균형있게 섭취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하는 것이다. 내 취미 중의 하나는 심야에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을 돌려가며 보는 것인데, 지난번 설 연휴 전후에는 유독 건강 선물세트를 광고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이를테면 금연초나 금연 보조상품, 송이버섯, 지황, 녹용 에끼스 같은 것들 말이다. 저걸 사? 말아? 부모와 함께 사는 나도 잠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만큼 광고는 유혹적이었고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럴 때는 나도 무엇이든 먹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든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초조해지곤 한다. 마치 남들은 다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앞서 뛰고 있는데 나 혼자서만 운동화 끈이 풀린 채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꼭 그런 이유로 내가 요가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실 건강 신드롬이 일기 전부터 나는 뭔가 내 몸에 맞는 운동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던 중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 사람들만 봐도 주말이면 등산을 하거나, 헬스클럽을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들 역시 오래 전부터 건강을 위해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가 운동을 시작했다. 나의 어떤 은사는 장문의 편지에다 이렇게 써 보낸 적이 있다. 몸을 너무 혹사하거나, 또 몸을 너무 방치하면 반드시 그 대가가 있느니라. 지금 읽어도 듣기 싫은 잔소리 같지만 그러나 그게 사실인 걸 알게 됐으니 어쩌랴. 나는 요가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른다. 그러니 요가에 대해서 시시콜콜 쓸순 없다. 내가 아는 요가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육체의 한쪽으로 쏠려서 오는 불균형을 반대쪽의 원리로 해소한다는 기본적인 원리만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예로 드는 것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특별히 아픈 데는 없었지만 늘 소화기능도 약하고 심신이 피로하고, 하는 일 때문인지 어깻죽지와 목이 항상 뻐근했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편두통 때문에 무척 고통을 겪기도 했다. 요가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나는 내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어느 틈엔가 나는 요가 예찬론자가 되고 있지만 무턱대고 아무에게나 권하지는 않는다. 나에겐 달리기보다 요가가 맞는 것처럼 어떤 이에게는 등산이, 어떤 이에게는 달리기가 체질적으로 맞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선은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금연도 좋고 채식도 좋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무리한 시도는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질병이 하루아침에 찾아오지 않듯, 건강이라는 것도 하루아침에 찾아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한가지 하고자 결심했을 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이 건강 열풍과 신드롬이 하루아침에 끝날까 봐, 일회용 혹은 작심상일로 끝날까 봐 염려스럽다. 끼니가 없어 배를 곯았던 시절을 지낸 나의 부모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밥상을 차리고 나는 그 밥상 앞에서 때로 숙연해지곤 한다. 아무튼, 내일은 꼭 요가를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