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흘 동안 철도 등 공기업 노조들의 파업 사태로 전국 각지의 교통 대란,물류 대란 등 국민경제와 민생에 미친 물질적·정신적 비용은 엄청났다. 지난 4년간 추진돼 온 정부의 개혁 성과 홍보를 머쓱하게 만드는 고질병-불법파업의 도짐을 보았다. 때마침 국가신용도 평가를 위해 방문한 무디스 실사단이 금번 파업사태와 관련해 노조 행태를 관망하며 정부 대처능력을 주목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들은 또한 국회파행도 지켜볼 것이다. 부적절한 시기에 가장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5일자 한국경제신문에는 국내 9개 민간연구소장 대상 설문조사 '부문별 구조조정의 평점'에서 기업과 금융을 B-,노동과 공공을 D+로 평가한 보도가 있었다. 필자라면 그보다 한 두단계 낮은 평점을 주었을 것이다. 그간 개혁성과가 외환보유실적과 같이 우량하게 평가할 수 있는 부문도 있지만,전반적으로는 '미완의 개혁'으로 알려졌고,KDI도 '절반'만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간 성취한 구조조정 과제들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던 반면,미뤄온 남은 과제들이 더 어렵고,더 근본적인 난제들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구조는 복합적이다. 가장 표면에 드러나 쉽게 눈에 띄는 외환문제로부터 금융 기업 노동 정부관료 정치권을 거쳐 한국 위기의 깊은 병집을 형성해 온 사회문화(적당주의 연고주의 법질서 무시 등)에 이른다. 그런대로 절반은 성공했다고 보는 것은 외환 금융 기업 부문의 성취 때문이다. 그간 부실기관정리 인원감축 부실자산 털어내기 등 덕분에 금융부문은 일본보다 한 단계 앞선 모습을 갖추게 됐으나,여기에도 새로 도입한 경영 투명화,내실화 제도들이 뿌리를 내렸다고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부채비율 2백%로 상징되는 대기업 개혁,기업의 지배구조개선,감사제도강화 등도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다. 반면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악용한 새로운 유형의 기업 부실이 최근 각종 게이트를 통해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긍정적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규직 감소,파트타이머 증가 추세가 민간기업 부문에서 두드러지고 있고,성과급 제도의 확산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공기업 부문의 개혁은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개혁의 올바른 우선 순위를 밟았다면,민간기업 부문에 앞서 공기업 부문에서 구조조정의 선례를 분명히 보여야 했다. 그러나 조폐공사 노조문제를 잘못 사건화했고,책임소재를 경영진에 돌린 1·2심 판결은 문제의 본질을 더욱 그르쳐 파장이 우려됐다. 엊그제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 판결이 사리에도 맞고 개혁 친화적인 일이어서 다행이다. 노동쟁의는 노동조건을 중심으로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공기업 민영화 여부는 경영권의 문제이며,국민경제의 거시적 관점에서 결정할 일이다. 파업 3일째 협상이 극적 타결돼 노조가 파업을 풀었다. 그러나 합의문에는 민영화 문제 언급을 회피하고 근로시간 단축,수당개선,인력충원 방안 등만 담겨 있다. 이래서야 공기업 비효율성 제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앞으로 쟁의 불씨가 남아 있다. 향후 적자경영구조를 외면한 채 집단이기주의를 추구해 국민경제와 민생을 인질 잡는 공기업 노조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애써 쌓아올린 그간의 개혁 성과의 탑이 사상누각이었음을 국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정부는 노동조건 개선에는 귀를 기울이되,민영화 등 원칙에는 양보가 있어서는 안된다. 한편 26일 국회 재경위에서는 동일인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확대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정부가 다수 은행의 거대주주로 돼 있는 상황에서 관치금융으로부터 조속히 해방되는 불가피한 방법이다. 민간 대주주의 사금고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주주 여신한도제한, 건전성 감독의 철저화 등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또한 공적자금운용 원활화를 위한 예금보험공사채 발행 동의안 등 국회처리를 기다리는 안건이 산적해 있다. 정권은 오고 간다. 당리당략 때문에 이익집단들의 불법행위에 굴복할 수 없다. 국민경제와 민생은 영원하고 절대적 가치이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