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테러는 침체의 늪에 빠졌던 세계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다. 사실 지난해 9월11일 직전만 해도 경기회복 조짐이 엿보였지만 테러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4%로 낮췄다. 지난 93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세계경제의 회복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테러 이후 각국 공조,재고소진,에너지가격 하락 등에 힘입어 세계경제가 향후 수개월 안에 정상을 회복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경제 성장이 더욱 힘을 얻기 위해서는 선진국을 포함한 각국의 구조개혁이 필수다. 특히 일본의 개혁은 선결과제다. 일본은 현재 10년만에 세 번째 경기침체를 맞고 있다. 9.11테러는 세계경제 회복을 지연시킨 것처럼 일본경제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일본경제의 침체는 테러보다 일본의 근본적인 구조개혁 지연에 원인이 있다. 일본은 투자와 수출보다 혁신과 생산성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일본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거시경제적으로 볼 때 일본경제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은 은행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어떤 국가도 건전하고 수익성있는 은행 시스템 없이 성장할 수 없다. 일본은행들은 거품붕괴 이후 70조엔 이상의 채무를 그럭저럭 해결했지만 지급거부된 부채규모가 여전히 전체의 6%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확한 실사가 이뤄진다면 이같은 악성부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공적자금 투입이 금융안정을 가져오겠지만 이에 따라 은행 수익성이 저절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공적자금은 경영진 개편 등을 포함한 강력한 구조조정 아래서만 집행돼야 한다. 은행개혁 못지 않게 기업의 건전성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일본의 지난 10년간 재정정책은 공적부문에 막대한 부채를 안겨줬다. 공적부문의 건전성을 회복하는 일은 정책 결정자들에게 거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또 많은 시일이 소요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이 올해 이같은 점을 감안해 긴축정책을 펴고 있는 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실질 GDP가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도 말이다. 일본은 단기적으로 중립적인 재정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이 경제상황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공사업에 대한 지출을 줄이고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야 한다. 정부는 이와 함께 중기적인 재정통합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은 9.11테러 이후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물가는 지난 2년반동안 계속 내리막길을 달려왔다. 일본은행의 최근 조치들도 이같은 흐름을 쉽게 역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일본은행은 일정 기간동안 연 2~3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제시한 거시경제 정책들은 단기적으로 엔약세를 유발할 것이다. 하지만 엔약세의 부작용은 몇년전에 비해 훨씬 작아진 상태다. 또 멀리 보면 일본경제가 회복하면서 약화 강세가 다시 연출될 것이다. 일본경제의 앞날에는 많은 도전들이 놓여 있다. 일본정부가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하면 그 대가는 값비쌀 것이다. 금융불안은 심화되고 경제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다.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이같은 노력은 고되지만 보상은 무엇보다 달콤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일본이 세계번영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이 글은 스기사키 시게미쓰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가 최근 뉴욕의 일본 소사이어티에서 "Global Prospects after September 11 and Implications for Japan"을 주제로 행한 연설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