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규모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1년 9월 말 현재 가계부문의 금융부채잔액은 3백16조원에 달했다. 이는 기업부채잔액 6백50조원의 48.6%에 육박하며,IMF 외환위기 시점인 1997년 말 2백11조원 대비 49.70%나 증가한 수치다.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시중은행들이 위험부담 큰 기업보다 수익성 높은 가계대출에 치중한데 그 원인이 있다. 현금서비스 등 신용카드대출이 늘어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가계부채가 늘면서 신용불량자도 양산되고 있다. 그동안 수 차례에 걸친 사면조치에도 불구하고 2001년 3·4분기 말까지 7백37만건이 발생했다. IMF 고통이 정점에 달했던 98년의 4백75만건과 비교할 때 55.1%나 증가한 것이다. 한편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것은 소비자금융이 활성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 전까지도 선별금융 등 신용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의 자산운용에 대한 규제로 소비자는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또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현재의 소득에 구애받지 않고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원활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늘어난 가계부채는 범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출은 부진했으나 가계부채가 내수를 떠받친 것이다. 2000년과 2001년 기업의 자금조달·운용은 모두 감소한 반면 개인은 증가했다. 특히 2001년 3·4분기 자금순환동향을 보면 규모 면에서도 기업을 압도했다. 기업 대신 가계가 지난해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끈 것이다. 가계부채의 이와 같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염려하는 이유는 그 규모와 증가속도 때문이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가계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2001년 1·4분기 2.64배에서 2·4분기 2.59배,3·4분기 2.52배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2001년 2·4분기 현재 미국(4.2배)과 일본(3.7배)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이는 경제성숙도에 비해 가계부채가 과도하다는 것을 의미하며,방치할 경우 자칫 기업재무구조 뿐만 아니라 가계 재무구조도 부실화될 소지가 있음을 나타낸다.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는 금융기관의 자산운용에 대한 규제 철폐 및 저금리정책 등의 영향도 있다. 앞으로 심각한 거시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있다. 지난 주 한국금융연구원이 개최한 '가계부채'세미나에서 그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듯이,가계부채로 인한 '붐 버스트 사이클'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주택담보대출의 증가가 소비지출과 주택가격을 올리고,다시 주택담보대출의 증가로 이어지는 순환현상'이다. 지난 80년대 중반 영국에서 이른바 '빅뱅'이라고 불리는 전면적인 금융자유화조치로 발생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주택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초래됐다. 이제 금융감독당국은 신용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할 때다. 부동산관련 대출규모·금리에 신용위험이 적절하게 반영되었는지의 여부를 치밀하게 관찰하고,이에 따른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개별금융기관도 자산유동화·증권화를 통해 위험부담이 큰 부동산관련 대출을 거래 가능하게 함으로써 적정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물가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자산인플레는 조만간 재화인플레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말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의 하나인 무디스도 '한국은 앞으로 인플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당장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부채 부실화로 취약한 금융이 다시 나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금리를 인하하면 인플레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되고,따라서 붐 버스트 사이클의 위험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정부는 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통화신용정책의 운용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할 시점이다. kimks@skk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