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문제와 관련해 최근 미국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분명 예사롭지 않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데 이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보낸 경고 메시지가 그렇고,토머스 하버드 주한 미대사가 "북한의 체면을 살려달라"는 한국측 주문을 한마디로 거절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 발언을 두고 해석이 구구하자 31일 다시한번 확인이라도 하듯 북한에 대해 "악의 협박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함으로써 모종 조치의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경고에 대해 북한 외무성이 1일 '사실상의 선전포고'라는 공식반응을 보인 것으로 보아 93∼94년과 흡사한 한반도 위기 상황이 재연될수도 있다는 전망이 허무맹랑하게만은 들리지 않는다. 물론 이 시점에서 부시 대통령의 대북 경고를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미 국방예산 증액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부풀릴 필요성이 있었을지도 모르며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관련해 한국정부에 대한 압력성 발언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건 미국과 북한의 자세가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고 이는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에 큰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사태진전이 아닐수 없다. "앞으로 한반도는 아프간 전쟁의 역풍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이 그래서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부시행정부가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을 할 때마다 "대북 문제에 관한 한 한·미간에 이견은 없다"면서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렇게 어물쩍 덮어버리고 넘어갈 일이 아닌성 싶다. CSIS의 지적대로 테러 전쟁의 여파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면 대미 외교전략은 물론 대북정책도 새로운 상황에 맞춰 완전히 새로 짜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부시정권의 냉랭한 대북 시각과 북한의 격앙된 맞대응이 한반도에 이상기류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20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은 잘만 하면 양국간의 대북인식차를 좁히는 동시에 미국의 유연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대북정책은 위협보다는 설득과 창조적인 외교가 최선이라는 점을 모두가 상기했으면 한다.